[시인과 소설가가 추천하는 가을 시선 20]<2>새떼들에게로의 망명

  • 입력 2007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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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바람 불면 뼈가/ 살 속에서 한쪽으로 눕는다// 꽃잎이 검은 무늬를 쓰고/ 내 눈에서 떨어져/ 발등을 깨친다// 나는 안 보이는 나라를 편애하는 것이 틀림없어/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만큼 멀까―‘진흙별에서’》

잠시 걸음 멈추고 피워올린 ‘상상력의 군불’

가을 밤하늘에 점자처럼 꾸욱 눌러 찍어놓은 별이 있다. 길을 가다 가끔씩 그 별을 바라본다. 흐트러진 숨을 가지런히 하고 골똘하게 시선을 별에 비끄러맨 채 잠자코 한참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던 별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아, 별이 흐르는구나. 별도 나도 어딘가로 글썽이며 흘러가고 있구나. 보일 듯 말 듯한 그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멈춤, 그렇다. 별을 보기 위해선 ‘멈춤’만 한 천체망원경도 없다. 세상의 어떤 망원경 렌즈보다 더 배율 높은 렌즈를 일상의 시간을 정지시키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장석남의 시를 읽는 일은 별을 바라보는 일과 같다. 그의 시 앞에서 나는 곧잘 번잡한 일상에서 놓여난 채 시간이 정지되는 황홀한 경험을 하곤 한다. 뿌연 안개가 한 방울의 투명한 이슬로 뭉쳐지듯, 이 정지된 시간에 대한 집중을 통해 나 역시 간신히 한 점의 맑은 응결체를 꿈꾸게 된다.

시인의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을 들고 떠돌던 문청 시절이 생각난다. ‘햇빛들이 피난을 온’ 사리포구(‘건어물들’)와 ‘풀들이 아관파천한’ 서해(‘붉은 구름’)와 ‘어미소가 송아지 등을 핥듯 마음을 핥는’ 섬진강(‘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 캄캄했던 한 시절 내 배낭 속에 있던 그의 시집은 여행지도였고, 나침반이었다. 독도법이라도 익히듯 까맣게 손때가 묻어나도록 어루만진 풍경들을 통해 나는 얼마나 큰 위안을 얻곤 하였던가. 허위단심 망명정부라도 찾듯 찾아간 풍경 한 점.

‘군불을 지핀다/ 숨쉬는 집/ 굴뚝 위로 집의 영혼이 날아간다/ 家出(가출)하여, 적막을 어루만지는 연기들/ 적막도 연기도 그러나/ 쉬 집을 떠나진 않는 것/ 나는 깜빡 내/ 들숨 소리를 지피기도 한다’(‘군불을 지피며’)

이 시를 지피고 있는 ‘군불’은 생명의 불이다. 순환하는 들숨과 날숨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따라 몽상의 불이 타오른다. 지상을 떠나 적멸에 이르고 싶은 연기의 상승 의지와 지상에 뿌리 내린 집의 하강 의지를 숨결에 비유한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시인은 언뜻 상충되어 보이는 두 의지를 자연스러운 생명의 호흡으로 받아들인다. 지상의 들숨을 끝없이 들이쉬면서 날숨으로 토해지는 연기. 여기서 삶에 대한 시인의 은근한 긍정을 읽을 수는 없을까. 비록 적막한 집이지만 그 속에 ‘버짐 핀 아낙과 새끼들을 품고 그냥 환한 방’(‘물방울 방’)이 되고 싶은 따듯한 마음을 더듬어 볼 수는 없을까.

시의 천체에 빛나는 거개의 명편들이 그렇듯 장석남의 시는 그대로 하나의 고즈넉한 풍경이 될 줄 안다. 누가 말했던가. 풍경은 해석보단 다감한 연애를 꿈꾸기 마련이라고.

이 가을, 한 음 한 음 저마다 다른 음표로 떨어져 내리는 낙엽이라도 끌어 모으고 나도 상상력의 군불을 지펴봐야겠다. 안으로 깊어진 아궁이에 오도카니 웅크려 앉아 굴뚝 연기가 더듬는 하늘의 별이라도 하나 꾹 눌러 찍어봐야겠다.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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