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우리가 일본에게 확실히 지는 것 한 가지

  • 입력 2009년 9월 8일 22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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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드디어 ‘다이내믹 저팬(Dynamic Japan)’이 됐습니다!” 한국을 “다이너미즘(역동성)의 나라”라고 자주 얘기하던 일본 언론인이 8·30 일본총선 다음 날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아사히신문의 정치에디터는 ‘2009년 8월 30일은 후세의 역사연표에 굵은 활자로 특필(特筆)될 것이다’라고 썼다.

중의원 480의석 가운데 자민당 의석이 63%(300석)에서 25%(119석)로 무너지고, 민주당 의석은 24%(115석)에서 64%(308석)로 팽창해, 하늘과 땅이 뒤바뀌듯이 정권이 교체됐으니 세기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답답할 정도로 변화가 더딘 일본에서 이런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판이니 ‘한다면 하는 나라’ 한국에서 3년 뒤 정권이 다시 바뀐들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일본 언론들은 이 극적인 총선결과를 조목조목 분석하면서도 각 정당의 지역별 당선자수 분포를 표로 만들어 제공하지 않았다. 정당별 소선거구와 비례구(比例區) 당선자 합계표가 고작이다. 일본 기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지역 편차는 별로 관심거리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선거 결과표를 뒤적여 북쪽의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남쪽의 규슈(九州)까지 전국 11개 지역블록의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율을 봤다. 민주당은 최저 38%(규슈블록)∼최고 46%(도호쿠·東北블록)였고 단순평균은 42%였다. 자민당은 최저 23%(긴키·近畿블록)∼최고 32%(주고쿠·中國블록)였고 단순평균은 27%였다.

그 나라엔 영·호남·충청이 없다

작년 4월 우리나라 18대 총선의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율은 어땠는가. 전국 평균은 한나라당 37%, 통합민주당 25%였지만 광주에선 한나라당 6%, 통합민주당 70%였고 대구에선 한나라당 47%, 통합민주당 5%였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지역구 당선자수는 영남에서 46 대 2, 호남에서 0 대 25로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에 가까웠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의 전국 득표율은 각각 48.7%와 26.1%였지만 대구는 69.4% 대 6.0%, 광주는 8.6% 대 79.8%였다.

이번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단 1석이라도 얻은 정당은 모두 9개인데, 이 가운데 지역당은 홋카이도에서 비례대표 1석을 차지한 다이치(大地)당이 유일하다. 그 당선자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대표가 워낙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덕에 홋카이도에서만 정당 득표율 13%를 올렸다. 우리나라에선 자유선진당이 18대 총선에서 오직 충청권에서만 지역구 14석(전체 지역구 245석의 5.7%)을 차지했지만 누구도 대놓고 지역당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회창 총재가 정운찬 총리 기용에 대해 “충청권 민심을 온통 뒤집어놓고 있다”고 한 것이 오히려 ‘지역당 의식’을 드러낸 셈이다.

1955년 이래의 제1당 자민당을 완파하고 창당 13년 만에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의 조각(組閣)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일본의 내각 구성에 ‘지역 안배’라는 콘셉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선거 1등공신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그룹에서 몇 명, 간 나오토(菅直人) 전 대표 계파에서 몇 명 입각하는지 정도가 구경거리다. 그것도 국민적 관심사라기보다는 정관재언(政官財言)의 직업적 관심사에 가깝다.

일본의 인구는 남한의 2.6배, 국토 면적은 3.8배이고 경제력(GDP)은 4.6배 정도다. 우리도 세계 10위권의 경제국가로 올라섰고, 일부 과학기술 스포츠 등에서 세계 최고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일본은 그런 우리보다 훨씬 크고 부강하고 앞선 나라다.

국력에 현저한 격차가 있음에도 우리는 매사를 일본과 비교하려 한다. 이는 35년간의 국치(國恥)가 우리 국민의 DNA 속에 남긴 경쟁심과 일본 극복심리 때문일 것이다.

일부 일본인은 “어떻게 삼성이나 LG를 소니와 비교하며, 현대자동차를 도요타자동차와 비교하려 드느냐”며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가 일본 기업들을 추격하며 세계 1등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고 있는 것은 자랑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지역주의로는 선진국 못 따라가

그러나 나라 전체로는 아직 멀었다. 인구 5000만 명, 국토면적 10만 km²에 천연자원은 빈약하기 짝이 없고 갈라진 북(北)의 위협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나라가 일본 같은 선진국들과 경쟁하려면 남쪽 국민만이라도 똘똘 뭉치고 각 분야의 최고 인재들로 드림팀을 수없이 짜도 시원찮을 판이다.

담도 철망도 없고 자동차로 한두 시간이면 구석구석까지 오고갈 지역 간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하고 따지면서 갈등 반목을 거듭해서야 지역주의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국(大國) 일본을 언제 따라잡겠는가. 국민이 정치인들의 ‘지역장사’부터 지탄(指彈)과 표(票)로 몰아내야 한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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