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들은 당돌했다. 그는 저우 총리에게 “중국에서 유행하는 경극 ‘홍등기’에 나쁜 짓을 일삼는 일본 헌병의 성이 하토야마인데 억울하다. 하토야마란 성은 일본에서도 흔하지 않다. 우리 집안은 중국에 잘못한 일이 없다”라고 항의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의 30여 년 전 일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반(半)월간 자매지 ‘환추런우(環球人物)’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주간지 ‘아에라’가 최근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 두 잡지 모두 이 일화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일본 정계에 꽤 퍼져 있는 소문이라고 소개했다.
외교적 결례여서 거짓일 개연성이 많지만 이 일화가 주는 메시지는 다분히 상징적이다. 하토야마 집안은 오랜 세월 동안 중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양국이 격동의 세월을 보냈음에도 하토야마 집안과 중국 사이에 악연은 없다.
인연의 출발은 1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6년 8월 중국 북양함대가 일본 나가사키(長崎) 항에 기항했을 때 중국 수병과 일본 경찰 사이에 다수가 숨지는 무력충돌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수습을 맡은 이가 하토야마 대표의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鳩山和夫)다. 그는 사건을 잘 처리해 청나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그는 수많은 중국인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중일 민간교류의 물꼬를 튼 인물이다.
하토야마 대표의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전 일본 총리도 중국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그는 1954∼56년 총리를 지냈다. 한때 공산주의 탄압에 앞장섰던 전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공산화된 중국과 민간무역을 다시 시작하도록 정책을 폈다. 양국이 국교를 맺기 한참 전이었고 양국 간에 흘린 피가 채 마르지 않았던 때였다.
하토야마 대표의 아버지는 1976년 외상에 올라 평화조약인 중일화평우호조약을 추진했다. 또 청소년 3000명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토야마 대표의 어머니는 세계 1위 타이어 제조사인 브리지스톤 창업주의 딸이다. 이 회사는 현재 중국에서 대규모 공장 4개를 두고 있다. 이래저래 하토야마 집안은 중국과 인연이 깊은 셈이다.
이런 배경 아래 하토야마 대표는 성장했다. 그 자신도 일중우호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그의 친동생 하토야마 구니오(鳩山邦夫)는 일중우호의원연맹 이사를 맡고 있다.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鳩山幸) 여사는 1943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이처럼 ‘지중파’인 하토야마 대표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의 총리가 된다. 그는 줄곧 아시아를 중시하는 외교를 주창해 왔다. 그의 ‘아시아’에서 핵심은 중국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우파들도 그를 ‘친중파’ 수준을 넘어 ‘중국에 아첨하는 파’라고 비난할 정도다.
그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중일 관계의 최대 장애물도 사라졌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양국 갈등의 뇌관이었다. 이 때문에 수교 37년 동안 과거사에 발목을 잡혀 왔던 중일 관계가 본격적인 밀월시대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중국(China)의 노동력, 시장과 일본(Japan)의 기술, 자본이 결합하는 ‘차이팬(Chipan)’이란 신조어도 나왔다. 한국의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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