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다스린 15세기 전반 조선은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세종은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냈지만 특히 과학기술에서 두드러진 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시대 유럽은 르네상스가 한창이었으나 근대과학을 낳은 과학혁명은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세종은 웅대한 과학기술정책을 세우고 온 나라의 인재를 모아 과제를 맡겨 연구개발하게 했다. 그는 과학기술정책을 만들어 추진한 걸출한 지도자로 평가 받거니와 그 자신이 손색없는 과학자였다.
세종 대 과학에서 가장 볼 만한 성과는 천문학과 기상학에서 나왔다. 세종은 중국의 역법을 연구하게 해 10년 만에 칠정산을 편찬했는데 내편은 중국의 수시력을 서울의 위도에 따라 만들었고 외편은 중국에 도입된 회회(이슬람)력을 바로잡고 더욱 발전시켰다. 또 여러 가지 천문관측기구(간의, 혼의, 일구)와 시간측정기구(자격루, 옥루)를 만들었다. 조선은 카스텔리보다 200년 앞서 측우기를 만들어 방대한 관측 자료를 남겼다.
고려 때 최무선이 도입한 화기기술은 세종 때 큰 발전을 보여 천자총통을 만듦으로써 중국기술의 모방을 벗어났다. 중국 농서 의존에서 탈피해 조선 독자의 농업기술을 체계화하는 노력은 ‘농사직설’로 결실을 보았다. 이 책에서 농기구 이름을 우리말 발음으로 썼는데 호미나 가래 같은 조선의 독특한 농구가 나온다.
지리학에서는 세종 대에 완성된 신찬팔도지리지와 팔도도의 편찬을 들 수 있다. 지도의 보완과 새 지도 제작 사업은 계속되어 세조 대에 끝난 동국지도로 결산을 보았다. 세종의 업적 가운데 국산 약재, 곧 향약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을 빼놓을 수 없다. 세종은 향약채취월령의 편찬을 명했고 ‘향약집성방’을 편찬하게 했다. 고유의 약재와 벽촌의 경험방을 정리하고 의학의 이론체계와 연결한 책이다. 세종은 또 동아시아의학을 총정리하는 야심 찬 계획에 착수했다. 의학대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의방유취’의 편찬은 3년 만에 완성했으나 교정과 인쇄에 22년이 걸려 성종 대에야 간행했다. 이 책은 임진왜란 때 약탈해 간 1질이 일본에 남아 있을 뿐이다.
세종의 업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한글(훈민정음)의 창제다. 한글 발명의 의의는 긴 말이 필요 없거니와 오늘날 한글의 가치는 인문학뿐 아니라 수학 전자공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세종은 이 하나만으로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이 있다.
국내 과학사학자들은 세종 대가 한국과학의 황금기였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과학사 연구의 선구자 전상운 교수는 세종 대 과학이 15세기 전반의 서유럽은 물론 아랍과 중국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고 격찬한다. 박성래 교수도 일본보다 2세기 앞서 서울에 맞는 역법을 완성한 세종 대 조선의 높은 천문학 수준에 주목한다. 15세기 한국과학의 빛나는 성공의 배경은 무엇일까? 고려 때 원을 거쳐 들어와 축적된 아랍과학이 세종이라는 빼어난 지도자의 탁월한 정책으로 한반도에서 개화한 것이다.
송상용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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