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군 만행의 기억, 외세배척론으로”

  • 입력 2009년 9월 1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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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광해군 때 편찬된 ‘삼강신속오륜행실도’. 왜군에게 쫓기던 자매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일화를 담고 있다. 사진 제공 동북아역사재단
조선 광해군 때 편찬된 ‘삼강신속오륜행실도’. 왜군에게 쫓기던 자매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일화를 담고 있다. 사진 제공 동북아역사재단
‘임진왜란’ 한일 학술회의
“조선 근대화 장애물 작용”

임진왜란은 명의 쇠퇴와 후금의 부상이라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끌어낸 전쟁이었다. 임진왜란은 18세기 이후 일본 학계에서 ‘조선정벌론’과 ‘조선멸시관’ 등을 등장시키며 일본의 대외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학자들이 모여 임진왜란이 동아시아 세계질서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 ‘임진왜란과 동아시아 세계의 변동’ 학술회의가 19일 오전 9시 반 전남 여수시 오션리조트에서 열린다.

일본 교리쓰여대 기타지마 만지 교수는 미리 배부한 기조 강연문에서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일본 학계의 임진왜란 연구를 통사적으로 정리한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에 대한 학설사와 연구과제’를 발표한다.

임진왜란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실패를 비판했던 17세기와는 달리 18세기 이후 일본 학계에서는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이 아니라 조선 정벌로 보기 시작했다. 1905년 동경제국대 사학회가 펴낸 논문집 ‘홍안문록정전위적(弘安文祿征戰偉績)’은 조선을 정벌했던 도요토미의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아 러일전쟁에서 싸우는 일본군에게 역사교육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경향은 1950, 60년대 들어 임진왜란을 상호 교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로 보는 다양한 관점의 실증주의 연구로 바뀐다.

임진왜란 중에 나온 열녀와 효자, 충신의 행적을 기록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를 분석한 논문(손승철 강원대 교수)도 있다. 삼강행실도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다 목을 베인 어머니, 벼랑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자매 등 당시 조선백성의 피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손 교수는 논문에서 “(삼강행실도를 통해) 일본군의 만행은 조선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며 “이러한 기억과 인식은 19세기에 접어들어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으로 발전돼 조선사회 근대화에 장애로 작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리쓰여대의 호리 신 교수는 ‘동아시아 국제관계로 본 임진왜란’에서 도요토미는 당시 대륙 침공 후 3국 분할 구상안을 세울 정도로 구체적인 방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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