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전경일]명절 때 남편이 할 일

  • 입력 2009년 9월 26일 02시 56분


흠, 또 돌아왔군. 달력을 펴든 여자들이 한숨을 내려놓는 순간, 남자들은 왠지 모르게 비겁해지고 만다. 이럴 때 눈치 빠른 남편이라면 아내 눈치를 살피며 요령껏 위기의 순간을 넘길 필요가 있다. 아내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명절 때나마 푹 쉬고 재충전하면 좋으련만 전쟁 치르듯 보내야 한다, 남자들이란 도와준다고 해봐야 장 보러 마트에 가주는 게 전부라고 생색만 낼 뿐이지 전 하나를 야무지게 부치지도 못한다, 기껏 부침개 하나 부치면서도 이것 가져다달라 저것 가져다달라고 잔소리가 많다, 남편 시중드느니 차라리 여자가 달라붙어 하는 편이 낫다…. 차례 치르기도 전에 명절 신드롬에 빠지는 아내 앞에서 철없는 남편은 각성 좀 해야 할 성싶다.

연휴 때면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조용하게 휴가를 보내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이 한껏 일기 마련이다. 그래서 질투가 난다. 명절 연휴를 여행으로 시작하는 사람을 보면 감히 용기를 못 내서 그렇지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특히 맞벌이하는 여자들은 명절 가위에 눌려 연휴보다 일하는 날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할 터. 명절 연휴가 올핸 짧아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얘기엔 틀림없이 노동의 불평등성이 작용할 터다. 더구나 다들 얇은 주머니 사정에 명절이 길기만 하면 아무리 일가친척이 만나는 자리라도 서로 편할 리 없다.

명절 증후군은 이렇다 치고 올해도 나는 아내와 손도장을 찍었던 합의사항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이름하여 명절맞이 3원칙이다. 우리 부부가 이런 원칙을 세운 이유는 명절 후유증을 예방하고 뒤탈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실은 나나 아내나 다들 명절 때가 아니면 친척 얼굴도 보기 어렵다. 명절의 이런 혜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요는 역할 불균형성이 가져오는 삐걱거림이 오랫동안 후폭풍으로 작용하기에 불필요한 갈등요인을 줄여보자는 데서 시작했다.

다른 집과 비교말고 입 꾹 다물자

자, 우리 부부가 합의한 사항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비교하지 말 것. 어느 집은 어떤데 우리는 어떻다는 식의 비교는 명절을 가장 짜증나게 한다. 아이 성적이든, 애들 키든 비교하지 말자. 비교우위를 찾고자 하는 일만큼 어른으로서 작아 보이는 것도 없다. 게다가 부모의 이런 태도가 아이한테 좋을 리도 없다. 비교를 하든, 당하고 나든 심란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설령 좀 나아보일지라도 그저 입을 꾹 다물면 다툴 일도 속을 볶을 일도 없다.

둘째, 부모님 얘기는 그분들 얘기로 끝내자. 자식 모이면 어른들은 괜한 기대감에 어느 집은 어떻다면서 말을 떼기 일쑤다. 거기서 일정 거리를 유지하자. 어른 얘기 들을 때면 그만 못해서 속상하고, 못해드려서 마음 무겁고, 괜히 죄인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들어 집에 돌아와서도 후유증으로 남는다. 그걸 되풀이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명절 스토리는 그날 그 장소에서 끝내고 부모님께는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셋째, 술상은 알아서 차리자. 여자들은 음식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는데 남자들 술상 심부름까지 시킨다면 곤란한 일. 평소엔 다이어트한다고 야단법석이더니 명절 무렵이면 술상 펴놓고 앉아서 퍼먹는 남자들 꼴이란! 명절 끝나면 이번엔 헬스장 끊을 건가. 그럴 바엔 오랜만에 보는 집안 아이들 붙들고 생선도 쭉쭉 발라 밥 먹여줘 보고, 학교 운동장이든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마음껏 달리기하고 철봉도 하게 하자. 아니면 가을 들판 길을 자전거로 씽씽 달리든지. TV에 디민 코는 당장 빼들고 애들과 힘껏 놀아줘 보라. 집안 아이들과도 친해질 거고, 여자가 음식 만드는 데 도와주지 않는다고 눈 흘기는 일도 절대 없을 것이다.

이런 게 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이다. 자기 집에 가면 갑자기 돌변해 아내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분간도 못하는 남편이라면 곧 끝날 잔치 이후의 정국을 내다보시라. 그때까지 갈 것도 없다. 처갓집 가는 차 안에서부터 아주 길고 험한 가시밭길을 달려야 한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부부관계를 냉전에서 열전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미리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면 피해야 현명하다.

함께 거들어 주면 귀경길이 편안

행복한 명절은 부부가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만이 아닌, 행동하는 데서 시작한다. 물론 노동의 평등성이 함께해야 한다. 그럴 때 귀경길이 편안하다. 남자들! 올 추석 땐 무거운 궁둥이 번쩍 들고 바삐 움직여 보시라.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애들 자랑, 회사에서 나 잘나간다는 식의 얘기는 적당히 하시라. 남들도 비슷하기에 내 속내를 다 안다.

그리고 마지막 팁 하나! 만약 밥상머리에서 정치 얘기가 나오거든 딱 1절만 하시길. 다들 알지 않나? 결국 언성만 올라가고, 자칫하다간 체한다. 실속 없는 언성에 바쁜 여자들은 화만 난다. 대신, 적당히 화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서로를 위해줄 수 있는 얘기로 명절 끝내기를 하자. 친정 가는 길에 아내 마음이 편하다면 해외에 나가진 못해도 나름 의미 있는 연휴가 될 테니까.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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