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문학과 과학의 만남, 새로운 광맥 찾았죠”

  • 입력 2009년 9월 2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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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격투기에서 펀치를 날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소설가들이 창작을 통해 만끽하는 대리만족의 쾌감이 뭔지 알아버렸어요. 김 선생은 어떠셨어요?” (과학자 정재승 씨·왼쪽) “저야 늘 느끼고 있던 거였지요.”(소설가 김탁환 씨) . 9개월 동안의 ‘눈먼 시계공’ 집필과정을 되짚어보는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박선희 기자
“로봇격투기에서 펀치를 날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소설가들이 창작을 통해 만끽하는 대리만족의 쾌감이 뭔지 알아버렸어요. 김 선생은 어떠셨어요?” (과학자 정재승 씨·왼쪽) “저야 늘 느끼고 있던 거였지요.”(소설가 김탁환 씨) . 9개월 동안의 ‘눈먼 시계공’ 집필과정을 되짚어보는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박선희 기자
2049년 서울의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눈먼 시계공’은 지금까지 어떤 미래서적이나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한국의 가까운 미래 풍경을 파격적인 일러스트를 통해 시각적으로 선보였다. 일러스트 김한민 씨
2049년 서울의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눈먼 시계공’은 지금까지 어떤 미래서적이나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한국의 가까운 미래 풍경을 파격적인 일러스트를 통해 시각적으로 선보였다. 일러스트 김한민 씨
‘테크노스릴러 소설’ 9개월 연재 마친 소설가 김탁환-정재승 교수

김탁환 소설가
“융합적 글쓰기 첫 성과 자부심
국내 과학소설 촉매제 역할
‘눈먼 시계공’ 계속 진화할 것”

정재승 교수 “서로 배우고 도우며 새 길 개척
소설쓰기 즐거움도 알게 돼
다른 공동작품 계속 선보일 것”

동아일보 연재소설 ‘눈먼 시계공’은 여러 기록을 갖고 있다. 소설가 김탁환 씨와 과학자인 정재승 KAIST 교수의 만남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문학과 과학의 통섭이었다. 로봇공학과 뇌과학을 바탕으로 미래 사회에서 벌어질 가상의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테크노스릴러 장르 역시 이번 연재를 통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이다.

전문적인 과학지식과 로봇을 활용한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매회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을 선보여온 ‘눈먼 시계공’이 이제 9개월간의 질주를 끝내고 29일 막을 내렸다. 이에 앞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두 작가를 만났다.

―국내 최초로 소설가와 과학자의 공동작업을 시도했다. 지난 9개월을 되짚어본다면….

김=3년간 준비한 작업을 잘 마치게 돼 다행이다. 과학이란 게 역사만큼 쓸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로 알게 됐다. 나로선 또 하나의 ‘광맥’을 발견한 셈이다.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새로 발견해냈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할 게 많아졌다는 생각에 무척 기쁘다.

정=일단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소설을 처음 써봤는데, 평소 주로 해온 과학적 글쓰기와는 매우 달랐다. 늘 ‘과학적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지만 그것을 처음으로 직접 실천한 셈이다. 실험이 잘 안되고 논문이 안 풀릴 때마다 소설의 다양한 상상 속에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소설가들이 느끼는 창작의 쾌감이나 대리만족이 뭔지도 이제 알 것 같다.

김=무엇보다 ‘창작을 통한 융합적 글쓰기’의 구체적인 성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간 미래서적이나 과학소설은 주로 외국 책에만 의존해왔다. 동아일보를 통해 보여준 우리의 작업이 국내 과학소설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

정=개인적으로는 일간지 연재가 요구하는 성실함을 깨닫기도 했다. 마감을 지켜야 할 때 힘들었다. 내가 주로 김 선생을 애먹였다. 오랜 기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이기에 가능했다.

―로봇격투기라는 SF적 요소와 연쇄살인이라는 스릴러를 결합해 국내에는 생소한 ‘테크노스릴러’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과학자와 소설가가 소설을 같이 써 본 일이 없으니 대체 어떤 게 나올까 우리도 궁금했다. 처음에는 테크노스릴러를 표방했지만 다 쓰고 보니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 생존 문제 등에서 성찰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행본으로 다듬을 때 좀 더 보강할 생각이다.

정=김 선생 말처럼 로봇공학이나 로봇격투기처럼 SF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테크노스릴러란 정형화된 B급 장르를 벗어나는 요소도 많이 보인다. 매주 금요일 그 주에 등장한 과학 개념이나 연구사례 등을 소개한 것은 에세이적인 측면이 강했다.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힘들지만 그게 뭐든 국내에선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장르인 건 사실이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있다 보니 스포일러(비밀스러운 줄거리나 내용을 독자들에게 밝히는 행위)를 막기 위해 비밀로 해야 할 것이 많았다. 연재가 끝났으니 이제 속 시원하게 다 밝혀 달라.

정=글쎄, 그래도 될는지…. ‘눈먼 시계공’이라는 연재소설의 제목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같은 제목의 책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는 숨겨진 뜻이 있다. 로봇 ‘글라슈트’는 사실 유명한 수제 시계 이름이다. 소설 속에서 글라슈트를 만든 과학자가 바로 노민선이다. 즉, 글라슈트를 만든 과학자가 ‘눈먼(어리석은) 시계공(로봇공학자)’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눈먼 시계공’은 로봇을 우승시키기 위해,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어리석은 로봇공학자 노민선을 뜻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 점을 간파한 독자들은 없었다.

김=‘눈먼 시계공 퀴즈 대잔치’에 응모한 답변 중에서 범인을 정확히 맞힌 분들은 계셨다. 저자로서 불쾌감이 들 정도로 소설을 꿰뚫고 범인을 논리적으로 유추해낸 응모자도 있었다.

―과학과 문학의 통섭을 계속해나갈 생각인지….

정=단행본이 12월 초면 나올 것 같다. 200자 원고지로 총 2600장 분량인데 단행본에 맞춰 수정보완작업을 할 것이다. 김 선생과 함께 과학 스토리텔링은 앞으로도 해나갈 계획이다. 다음에 쓸 작품은 뇌과학이나 로봇 스토리텔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김=아이디어 산업이 이 시대의 화두라 해도 그것을 채워 넣을 실질적인 콘텐츠를 갖춘 경우는 드물다. 소설 속의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공원이나 도시, 집 등의 실물로 구체화할 기회가 있다면 재밌을 것이다. ‘눈먼 시계공’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그들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지켜봐주시기 바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눈길 잡은 일러스트 ‘금상첨화’▼
2049년 서울… 로봇 격투기대회…

김한민씨 철저한 조사-연구
“애니메이션 만들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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