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인문주간’이 30일 서울 광화문 중앙광장의 ‘시민시인 시화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상상으로 여는 인문학’을 주제로 지난달 21일 시작한 이번 행사에는 전국 16개 대학과 연구기관이 108개 프로그램으로 참여했다. 인문주간은 2006년 9월 전국 93개 대학 인문대학장들의 인문학 위기 타개 선언을 계기로 시민들에게 철학, 문학, 역사 등 다양한 인문학 체험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2006년부터 매년 가을에 열리고 있다.
올해 인문주간 행사에서는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는 주제의 강연과 발표가 많았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별개가 아니라 한 몸이며 자연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수라는 것에 두 분야의 학자들이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22일 서울 동국대에서 개최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위하여’라는 강연에서 “인문학은 추상적인 것을 설명의 영역으로 끌어오려다 보니 실용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개기일식을 모티브로 해 강연을 이어갔다. 개기일식이 달과 해라는 대립적인 표상이 뭉쳐 하나로 됐듯이 우리의 이질적인 경험이나 사고도 이처럼 새로운 표상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상반되는 그 무엇을 같게 할 수 있는 은유적 사고가 자연과학의 발전에도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건축공학부 교수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강연도 있었다. 전영일 동국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같은 날 동국대에서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날 “과학기술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인문학이 이정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양의 음양과 오행, 주역 등을 토대로 한 풍수지리학이 인문학으로 정립된 뒤 동양 건축기술이 발달했고, 15, 16세기 르네상스 건축은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들에게 로마 공화정 시대의 건축을 변용할 인문학적 능력이 있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인문학은 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힘을 실어주고, 기술이 올바른 길로 나가도록 도와준다”며 “이런 필요성 때문에 인문학은 절대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는 21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갈릴레오, 다윈을 만나다’란 강연에서 자연과학이 인간을 다루는 인문학에 끼친 영향에 대해 강연했다. 갈릴레오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깨우침을 인류에게 선사했고,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박우석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같은 날 KAIST에서 ‘인문학, 과학과 이야기를 나누다’라는 강연을 했다. 그는 이날 자연과학과 철학이 모두 우주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우주론은 예부터 지금까지 철학의 핵심 분야 중 하나였지만 오늘날의 철학자들은 등한시하고 있고, 자연과학에서는 우주론이 물리학의 한 분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대 점필재연구소에서는 부산대 정세영 교수가 ‘나노과학과 인문학의 접속’을, 서울대 이용주 교수가 ‘동양적 사유와 과학정신의 깊이’를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연구재단은 이번 행사에서 조선시대 과거 시험과 같은 작문 시험, 한강 유람선을 타고 듣는 역사 유적지 설명 등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아 내년에도 체험 행사를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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