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63주년을 맞는다. 세계에서 가장 진화된 언어라는 평가를 받는 한글은 세종의 개인 작품이다. 세종실록,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서문, 최만리의 상소문은 세종이 한글을 친히 만들었음을 분명히 밝혀놓고 있다.
정인지는 서문에서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 쓸 수 있게 됐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훈민정음을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고 편이성(便易性)을 높이 평가했다. 한글은 24개 글자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음성적으로 표기할 수 있다. 현대 일본어를 표기하는 문자는 46개이지만 ‘샐러리 맨’을 ‘사라리 만’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에 더 빛나는 한글
서울시립대 김영욱 교수는 ‘세종이 발명한 최고의 알파벳 한글’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디지털 시대를 맞아 한글의 우수성이 더욱 빛난다고 설명한다. 휴대전화 자판에서 ㅣ ㅡ · 세 글자를 조합하면 어떤 모음이고 만들어낸다. 자음도 비슷한 소리를 가획(加劃)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 휴대전화 자판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다. 자판을 한 번 누르면 ㄱ, 두 번 누르면 ㅋ, 세 번 누르면 ㄲ이 된다. ㄷㅌㄸ, ㅂㅍㅃ ㅈㅊㅉ도 마찬가지다. 10대 엄지족(族)은 글씨를 쓰는 속도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한국 기자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속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바로 기사를 작성해 전송한다. 이에 비해 일본이나 중국 기자들은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기사 작성이 훨씬 느리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뛰어난 언어학자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온다. 세종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 7명이 상소를 올려 훈민정음을 반대하자 “설총의 이두는 괜찮다 하면서 임금이 한 일은 그르다 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따지고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며 무식함을 꼬집었다. 그는 7명을 의금부에 가두었다가 바로 다음 날 풀어주었다.
미국 컬럼비아대 게리 레드야드 교수는 한글 자음 ㄱ ㄷ ㅂ ㅈ ㄹ 5개가 파스파문자에서 그 기하학적 모양을 빌려왔다는 이론을 편다. 파스파문자는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의 명으로 만든 공용문자이지만 글자가 복잡하고 실용적이지 못해 원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다. 국내 국어학자 중에는 레드야드 교수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다섯 자음의 모양과 소리는 우연의 일치라고 넘겨 버리기 어려울 만큼 닮은 구석이 있다.
세종은 중국과 일본에서 음운과 문자에 관한 서적을 구해와 섭렵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독창성이 맨땅에서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세종이 외국 자료를 수집해 깊이 연구한 바탕 위에서 한글의 독창성 과학성 실용성이 나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세종은 절대군주이면서도 아버지 태종과 달리 재위 32년 동안 신하에게 사약을 내린 일이 한 번도 없는 성군이다. 신하들이 옳은 말을 하면 자신의 뜻과 달라도 수용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해 완성된 태종실록을 보고자 했다. 그러나 신하들은 세종이 실록을 봤다는 기록이 남으면 고쳐 썼을 것이라고 생각해 후세 사람들이 그 역사를 믿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편수한 신하가 모두 살아 있는데 만약 임금이 실록을 본다면 이들의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세종은 신하들의 뜻을 받아들여 태종실록을 보지 않았다.
國格높이는 소프트 파워 가꿔야
태종은 목적을 위해 살생을 서슴지 않는 잔혹한 성품이었다. 태조 생존 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 방번 방석과 정도전 남은을 죽였다. 정사를 농단한다는 이유로 처남 4명도 죽였다. 1418년 상왕으로 물러나서도 세종의 장인 심온에게 사약을 내렸다. 태종의 최대 치적은 장남 양녕대군 대신 한글을 창제한 3남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은 한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와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알파벳이다. 세종과 충무공 동상이 서 있는 광화문광장이 국격(國格)을 상징하는 명소로 자리 잡으면 우리 국민, 기업, 상품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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