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정부가 국민행복지수를 만들고 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어요. 그 이유가 궁금해요.
[A] 지금까지는 한 나라의 발전 정도를 평가할 때 소득 수준이나 경제가 어떤 발전 단계에 있는지를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사용해 왔습니다. 한국의 경우 경제가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성장한 끝에 지금은 선진국 문턱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죠.
그러면 경제성장은 어떻게 측정할까요? 국제사회에서는 경제성장률을 계산할 때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내총생산은 한 나라 안에서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생산 활동에 참여해 새롭게 창출한 가치(부가가치)를 합한 것이죠.
특히 물가 상승의 효과를 제외한 실질적인 부가가치 증가분을 ‘실질 국내총생산’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실질 국내총생산이 지난해 1000조 원에서 올해 1050조 원으로 늘었다면 ‘1년 사이 경제가 5%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의 한계도 적지 않습니다.
먼저 국내총생산은 시장에서 거래된 서비스나 상품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오차가 큽니다. 주부들이 하는 집안일은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국내총생산에 포함되지 않죠. 자급자족하기 위해 텃밭에서 가꾼 채소도 제외됩니다. 깨끗한 환경, 여가 등의 가치도 포함돼 있지 않죠.
또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이 국내총생산을 늘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태풍으로 집이 무너지면 다시 짓는 과정에서 국내총생산이 늘어납니다.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이라면 정부는 환경오염을 제쳐두고 국민을 쉬지 않고 일하게 하면 됩니다. 가끔 대형 사고도 나야죠. 하지만 국민의 행복이 목적이고 경제성장이 이를 위한 수단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 씨가 1974년 발표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경제성장과 행복의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3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연구해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는 국민소득이 중요하지만, 일단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고 나면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의 국민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죠.
이 연구는 국민의 의식주가 해결될 때까지는 경제성장을 정책의 우선 과제로 추구해야 하지만, 그 후에는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연구 결과가 나온 후 학계에서는 국내총생산 대신 국민의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됐습니다. 실제로 국민행복지수, 인간개발지수 등도 개발됐지만 행복이라는 주관적인 감정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가 어려워서인지 아직까지 국내총생산을 대체할 만큼 널리 쓰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008년 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에게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이른바 ‘행복 GDP’ 지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국내총생산이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경제 발전 정도에 비해 행복지수가 낮은 편입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15위이지만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올해 발표한 국민행복지수 순위에서는 143개국 중 68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국가행복지수 순위에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25위였죠. 전문가들은 한국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로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과 노후에 대한 불안,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자녀 교육에 대한 스트레스 등을 꼽습니다.
정부가 국민행복지수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도 경제력에 비해 삶의 질이 낮다는 지적 때문입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소득, 고용, 교육, 주거, 안전 분야의 5대 민생지표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죠.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달 부산에서 열린 OECD 세계포럼에 참석해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 경제는 물론 국민의 행복도를 꼼꼼하게 챙겨 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부디 이런 노력들이 성과를 내 여러분이 어른이 됐을 때는 경제력만큼 삶의 질도 높아진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