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명태는 꽁꽁 얼었다/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문턱에 꽁꽁 얼어서/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백석의 ‘멧새소리’에서>
백석(1912∼1995)의 시는 맛있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스르르 침이 고인다. 떡만 해도 인절미, 백설기, 호박떡, 송구떡, 콩가루차떡, 니차떡, 기장차떡, 감자떡, 조개송편, 달송편, 죈두기송편 등 수두룩하다. 그뿐인가. 메밀국수, 가지냉국, 강낭엿, 개장국, 건시, 매감당, 곰국, 돌나물김치, 두부산적, 무감자, 기장감주, 튀각, 고추무거리, 깨죽 등 수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그 종류가 무려 110여 종에 달한다(소래섭 울산대 교수 분석). 하나같이 소박한 토종음식이다.
백석은 평안도 사람답게 메밀국수를 좋아했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라며 반겼다. 생선 중엔 가자미가 으뜸이었다. ‘광어 문어 고등어 같은 생선들은 모두 한 끼에 그를 물리게’ 했다. 가끔 ‘호박닢에 싸오는 붕어곰도 맛있었지만’ 오직 가자미만이 ‘그의 가난하고 쓸쓸한 상에 한 끼도 빠지지 않고’ 올랐다.
명태는 백석 자신이었다. 그것도 한겨울 처마 끝에서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황태였다. 꽁꽁 얼어 가슴에 ‘창 고드름’을 수없이 달고 있는 노랑태였다. 대롱대롱 입 벌리고 걸려 있는 서러운 명태. 칼바람 눈보라에 속살까지 노랗게 멍든 미라. 방망이로 두들기지 않아도 부들부들한 살집. 시인의 언 가슴은 말라 터져 더덕처럼 부풀어졌다.
명태가 사라졌다. 요즘 동해에선 더는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 1981년 16만 t에서 2006년 60t으로 줄더니, 2008년부터는 아예 통계에서 빠졌다. 국내 명태는 대부분 오호츠크해와 베링해에서 잡아온 것이다. 일부 일본에서 사온 것도 있다. 국내 수요의 70%를 차지하는 강원도 용대리 황태덕장의 명태도 마찬가지. 원양어선 명태조차 금값인 데다 구하기도 쉽지 않다. 2007년 2200만 마리를 덕장에 걸었지만 올해는 1700만 마리에 그쳤다.
도대체 그 많던 명태는 어디로 갔을까. 명태는 찬물에서 사는 흰 살 생선이다. 전문가들은 바닷물이 따뜻해진 것을 첫 번째 이유로 삼는다. 동해 수온이 30년 사이 0.8도(세계 평균 0.5도)나 올랐다는 것. 오호츠크해 베링해에서 씨가 말랐다는 주장도 있다. 아예 겨울철 산란을 위해 동해로 내려올 명태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카아!)/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짜악 짝 찢어지며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명태, 명태, 라고 이 세상에 남아있으리라’ <양명문 시, 변훈 곡, 오현명 노래, 가곡 ‘명태’에서>.
명태는 왜 명태일까. 함경도 ‘명천’고을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처음 잡았다 해서 ‘명태’라는 설이 있다. 이 생선을 많이 먹으면 ‘눈이 맑아진다’고 하여 명태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제사상에서 빠지면 큰일 나는 생선이었다. 명태새끼는 노가리, 냉동하지 않은 싱싱한 것은 생태, 꾸덕꾸덕하게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 완전하게 얼린 것은 동태, 두 달 정도 바짝 말린 것은 북어, 봄에 잡힌 춘태, 산란 후에 잡힌 꺽태, 작은 것은 막물태, 애기태 그리고 강태. 망태, 백태, 왜태, 조태, 진태, 흑태…. 내장은 창란젓, 알은 명란젓을 담근다.
황태덕장에서도 여러 이름이 있다. 명태는 덕장에서 ‘사람 손이 수십 번 넘게 가야 황태’가 된다. 서너 달 동안 스무 번 이상 얼렸다 녹였다 해야 한다. 적당하게 춥고, 바람도 알맞게 불어줘야 한다. 결국 황태는 하늘이 만들어 준다. 덕장에서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것은 무두태, 몸이 부서진 것은 파태, 속이 딱딱한 놈은 골태, 검은 빛을 띤 놈은 흑태…. 황태는 속살이 노르스름하고 부드러워야 한다. 기계로 말린 것은 흰빛이 나며 딱딱하다.
서울 무교동북어국집(02-777-3891)은 장안 술꾼들의 속을 40년 넘게 달래주고 있는 곳이다. 식당 앞은 언제나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휴일엔 일본 관광객들도 많다. 메뉴는 오직 북엇국 한가지뿐. 밤새 고아낸 사골국물에 북어, 계란, 두부를 넣어 끓인다. 밑반찬은 오이지, 부추겉절이, 김치 3가지에 새콤하고 칼칼한 물김치. 단순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북엇국은 앉자마자 나올 정도로 빠르다. 무엇이든 무한 리필.
황태구이는 살 속까지 고루 배어들어간 매콤새콤한 양념 맛이 일품이다. 황태를 참기름, 파, 마늘, 고춧가루 넣은 양념장에 잠시 재웠다가 구워낸다. 부드러운 살이 살살 녹는다. 황태해장국은 뽀얀 국물이 시원하다. 설악산 용대리 부근의 다릿골가든(033-462-9366), 용바위식당(033-462-4079), 백담식당(033-462-2033), 횡계리 황태회관(033-335-5795).
이른 아침, 아내가 다듬잇돌에 북어를 올려놓고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방망이질이 매섭다. 그 옆엔 밤새워 술 마시고 들어와 쓰러져 자는 남편. 얼씨구,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곤다. “저 웬수!” 아내의 손이 더 빨라진다. 남편은 아는지 모르는지 천하태평이다. 북어는 두들겨 맞으면서 얼부푼다. 살도 결 따라 보풀보풀 보푸라기가 인다.
어젯밤 남편은 북어포를 쭉쭉 찢어 안주로 먹었다. 대학시절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노가리 안주는 사라졌다. 새끼를 잡아대면 명태 씨가 마른다. 그렇다. 사는 게 뭐 별건가. 노가리처럼 싸리나무 꼬챙이에 끼워져 있는 막장인생. 눈 부릅뜬 채 입을 쩍 벌리고 노릇노릇 구워진 노가리신세. 가도 가도 팍팍한 황톳길. 이젠 명태 눈알이나 구워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울컥 목이 멘다.
‘새벽에 너무 어두워/밥솥을 열어 봅니다/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별이 쌀이 될 때까지/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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