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활동이란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최대한 진보적인 문화활동
● 베토벤과 밥 딜런의 음악이 시대를 대표하게 된 이유는?
태초에 음악이 탄생할 때부터, 모든 음악은 순수한 평화의 상태를 지향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평화의 본질이 명상이나 휴식 혹은 위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는 전쟁의 타자(他者)이다. 세속의 권력 투쟁에서 많은 음악, 혹은 악기들이 전쟁에 고용되었다. 그리고 집단적 일체감을 고양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영매 역시 바로 노래였다.
따라서 음악은 어떤 예술 양식보다도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행동이다. 그것은 종교적 제의를 통해 가장 완벽한 안식과 구원을 형상화하는 한편으로, 일상적인 욕망의 직설적인 토로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양립 불가능한 자기모순이야말로 음악이 가장 궁극적인 형태의 평화를 획득하려는 의지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다시 말해 합리적 이성에 기반을 둔 계몽주의가 신적 질서 혹은 주술의 마법을 세계에서 걷어낼 때까지 인간은 종교적 제의를 통해 현실의 비극을 극복하는 음악적 봉헌 의식을 발전시켰다.
그레고리안 성가부터 미사에 이르는 서구 교회 음악을 위시한 종교 음악과 도처에 널린 무속 음악은 다름 아닌 평화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었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악의 목표는 '이상향'에 대한 갈구
우리의 전통음악 중에서 귀족 음악의 정수인 아악 '수제천'과 '영산회상'을 검토해 보자. 봉건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책무는 다름 아닌 '태평성대'란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귀결된다. 커다란 평화와 풍족함이 깃든 시대야말로 모든 왕도주의의 군주가 바라마지 않았던 이상이자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
이 아악들은 이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이상의 유장한 호흡이다. 봉건 시대의 이 음악들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이 거대한 음악의 우주 안에 우리가 지금 상실하고 있는 근원적인 평화의 숨결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여기,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고전음악의 세계사적 헤게모니는 유럽 부르주아계급의 제국주의적 전파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이 제 3계급이 부상하기 전까지, 다시말해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의 음악은 여러 문명권 중의 하나의 로컬음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인간 해방의 슬로건 아래 왕정과 교회 권력을 타파하며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부르주아 계급이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면서 그들의 평화적 음악 의지는 더욱 극적인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모차르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간결한 테제 - "고뇌를 넘어 환희의 세계로"는 바로 혁명적 투쟁을 통한 인간 해방을 구현하려는 변증법적 세계관을 말한다.
이들의 음악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보편적인 애호를 받는 이유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혁명적 질풍노도기를 빛낸 소나타 형식이야말로 대립자의 투쟁과 통일을 넘어 궁극적 진실에 도달하려는 헤겔의 방법론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 베토벤이 완성한 혁명적 클래식 "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
베토벤은 오선지 위에서 혁명을 실현한다. 그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동맹의 토대 위에서 구체제의 폭력적인 전복을 통해 위대한 해방의 유토피아가 실현될 것임을 굳게 믿었다.
아니, 바로 그 한복판에 서 있었다. 1827년에 죽은 그는 그가 찬양했던 순결한 부르주아 정신이 결국엔 프롤레타리아를 배신하고 짓밟으며 권력의 독점을 탐욕스럽게 수행했던 1848년의 살육을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해 그는 전 인류의 해방을 위해 순수하게 상승하던 부르주아 계급의 이상주의 안에서 '행복하게' 자신의 음악을 역사에 봉헌한 것이다.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의 그 유명한 4악장-그는 쉴러의 시를 빌려 와 이렇게 얘기를 시작한다. 발음이 유사한 '친구(freunde)'와 '환희(freude)'를 교묘하게 병치시키면서 "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를 장렬히 외치면서 합창은 끝난다.
그는 역사 발전의 필연적인 투쟁을 지나서 궁극적인 인류 해방의 평화를 그린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권력의 피를 묻힌 부르주아의 음악 이념은 급격히 퇴색한다. 이 텍스트들에서는 베토벤의 시대처럼 명확하게 도달해야 할 좌표가 실종된다.
해방의 슬로건은 허위로 드러나고 독점과 제국주의의 일방적인 폭력이 관성화되면서 고전주의의 위대한 조성체계는 흔들리고 애매해지며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그리하여 음악이란 그저 부르주아 살롱 혹은 공용 콘서트홀을 채우는 교양의 장식물로 전락하게 된다.
서구 부르주아 세계에서 실종된 음악에서의 인류애적 평화의지는 놀랍게도 19세기 중반 당시 세계에서 가장 참혹한 생존의 조건에 놓여 있었던 신대륙의 흑인 노예들에게 맡겨진다.
목화 농장의 노예들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던 처절한 구원의 발성이 다음 세기에 '대중음악'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세계를 지배하게 될 줄은 아마도 어떤 예언자들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스펠 가수 마할리아 잭슨이 심장의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부르는 흑인 영가 'Deep river'를 보자. 이들의 구원은 죽음밖에는 통로가 없다.
루이 암스트롱의 'When the saints go Marchin' in'의 흥겨운 그루브는 놀랍게도 장례를 치루고 돌아오는 행렬의 의식이다. 경쾌하고 매력적인 세속의 욕망 뒤에 자리 잡은 비극적 구원의 유혹-바로 블루스와 재즈, 알앤비(R&B)와 로큰롤, 디스코와 힙합에 이르는 20세기 대중음악의 거대한 물줄기에 세계인들은 동감의 지지를 보내게 된다.
19세기 전반 유럽 대륙에서 불타올랐던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이 대중음악이라는 새로운 육체 안에서 다시 부활하게 되는 것은 사랑과 평화(Love & Peace)의 기치 아래 20대 청년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었던 평화운동이 봉기한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 인류의 진보를 노래한 밥 딜런을 위시한 수많은 대중가수들…
이들이 내세운 유토피아적 이상은 반전과 반파시즘, 그리고 반인종차별과 페미니즘이다.
이 모든 테제의 근원에는 이른바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로 요약되는 평화 의지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대학가와 공장의 모던 포크 뮤지션들은 반전 평화를 일상적으로 이슈화했고 사이키델릭 록 음악들은 약물과 명상을 동반하며 초월적인 환각을 꿈꾸었다.
이 60년대의 반란에서 가장 전위에 서 있었던 이들은 포크음악의 청년 좌파들일 것이다.
모던 포크의 기수 밥 딜런의 1962년작 'Blowin' in the wind'. 이 노래는 마치 우리나라의 '아침이슬'처럼 당시의 청년지식인들의 성가가 되었는데, 전쟁에 대한 가장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결국 이 노래는 시대의 대표적인 음악으로 승화됐다.
"얼마나 많은 폭탄들이 날아다닌 후에야 그것들이 영원히 금지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음을 알게 될 것인가… 알 수 없네,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 속에 날리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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