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닐 적 일이다. 고향 전남 순천 인근 산에 큰 산불이 나 전소하다시피 했다. 지역 어른 대다수는 군수가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형제들은 이런 분위기가 의아했다. 군수가 불을 지른 것도 아니고 불이 나라고 기도한 것도 아닌데 왜 군수가 물러나야 하는 것일까. 미국인 선교사였던 아버지는 종종 우리 형제들을 앉혀놓고 한국 문화가 서양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다. 자칫 우리가 ‘다름’을 넘어 ‘틀림’으로 이해하는 일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아버지의 설명은 이랬다.
“한국 문화에서는 흉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 책임을 져야 조용히 일이 끝난다. 백성들이 잘못하더라도 관이 책임을 지는 문화다. 한국 백성들은 수천 년 동안 관으로부터 착취를 당했지만 동시에 백성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행동을 하면 관직에 있는 사람이 물러나야 한다. 이것은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다.”
얼마 뒤 군수는 조용히 물러났다. 다른 관직으로 옮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완전히 관복을 벗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산불 한 번에 공무원 생활이 끝나다니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문화는 오랜 기간 왕정 전통이 있는 한국에 숨어 있는 민주주의다. 통치 제도는 바뀌었지만 위정자들은 백성의 숨어 있는 잠재력을 두려워하면서 국가를 이끌어 나간다. 백성들은 평소 관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무한 책임’을 지우는 방식으로 관과 일종의 계약관계를 유지했다.
불행한 순천 군수의 기억을 떠올린 것은 서울에 큰비가 내렸을 때다. 수해 피해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우리집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말했다. “정치를 잘못해서 나라가 평탄하지 않네요.” 순천 군수가 산에 불을 지르지 않았듯 한국 정치인들 역시 하늘에 비를 많이 내려달라고 기도했거나 일부러 비 피해를 유도하지 않았을 텐데 백성들은 하늘이 아니라 정치인 탓을 한다. 아직 한국인에게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나라님이 잘못한 죄 때문에 하늘이 이런 재난을 내린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남아 있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가장 불쌍하지만 천재지변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정치인들도 측은하게 느껴졌다.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수해에 앞서 정부 당국이 미리 예방 대책을 세우고 대비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홍수를 적극적으로 유발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피해를 키웠을 개연성은 있다. 실제로 산사태가 날 것이라는 산림청의 경고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보도 등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증거도 나오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정부 당국에 책임지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람들의 가장 큰 강점은 ‘괜찮을 거야’라는 낙관주의다. 하지만 이런 점은 안전 불감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산사태 우려가 있는 장소 등 위험한 점을 발견했을 때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괜찮을 거야’라고 넘긴 적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정부 당국에 책임을 묻는 방법 역시 바뀔 필요가 있다. 무조건 높은 사람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누가 정말 책임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책임을 추궁하는 방법은 감정적이 아니라 과학적이어야 한다. 누가 허가하고 도장을 찍었는지, 허점이 있었다면 왜 그랬는지, 누구의 부패 탓인지, 제도 자체가 잘못인지 짚어봐야 한다. 누군가 피해를 보지 않으면 대충 넘어갔다가 피해를 보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지는 않았나. 한국의 경제력과 위치는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