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의 옛집 읽기]<60·끝>멀리서 걸어 보는 우리 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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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4일 03시 00분


다산초당. 열림원 제공
다산초당. 열림원 제공
우리 옛집은 멀리서부터 걸어가야 한다. 차를 타고 코앞에서 내려 옛집에 들어가 지붕의 처마선을 감상하고, 공포(공包)나 익공(翼工)을 보며 감탄하고 사진 몇 장 찍고 나와 다시 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것은 어리석다. 흐르는 개울을 따라 걷고, 개울을 경계로 펼쳐지는 논과 밭, 이 산 저 산을 둘러보며, 피어 있는 들꽃에 눈길도 주고, 일없이 다가오는 동네 강아지들과도 놀아주며 설렁설렁 할 일 없는 사람처럼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집에 다가가서는 일행이 있으면 툇마루에 걸터앉아 같이 못 온 친구들 얘기며 아이들 얘기, 날씨 얘기를 하며 두런두런 쉬어야 한다. 그러다 대화가 끊기는 잠깐 동안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툇마루에 묻은 먼지도 한번 손바닥으로 쓸어 보고, 어디 가까운 개울에서 들리는 물소리도 들어 보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집에서는 냄새가 난다. 오래된 창호지에서 나는 냄새, 가구들이 앉아 있는 풍경, 햇빛이 마당에 떨어져 반사되는 빛, 마당 어느 귀퉁이에 심긴 향나무나, 은행나무나, 배롱나무의 배경들과 그 꽃의 향기를 맡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고는 천천히 집을 둘러보며 방에 걸린 당호(堂號)를 알은척도 해보고, 뒷산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따져도 보고, 특별히 마음에 드는 산세가 있으면 그 산에 한번 올라가 보는 것도 괜찮다. 시간이 허락하면 그 산에서 집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한여름이면 산에 오르는 동안 송골송골 맺힌 땀을 거기서 씻을 수도 있을 터다.

그리고 괜찮다면 방에 들어가 앉아 보라. 문화재를 보호한다고 방에 못 들어가게 하는 곳이 많지만, 그건 정말 조선집을 모르고 하는 멋없는 짓이다. 조선집은 안에서 밖을 경영하는 집이다. 바깥에서 바깥을 경영하는 집이다. 그래서 우리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짧지 않은 길을 걸어 온 것이다. 그런 집을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어렵사리 방에 들어갔으면 이리저리 두리번거릴 일은 또 아니다. 조선집의 안은 별일 없다. 그저 방에 앉아서, 대청마루에 앉아서, 열린 방문을 통해서 무엇이 나에게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느끼면 된다. 만약 앉아 있는 곳이 연못의 정자라면 연못 속에 비치는 정물들을 유심히 보라. 그렇게 오감을 만족하는 집이 조선집의 맛이다.

시인·건축가
#함성호의 옛집 읽기#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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