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개봉한 영화 ‘토탈리콜’(폴 버호벤 감독)은 미국 공상과학(SF) 소설 작가 필립 딕(1928∼1982)의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스크린에 옮겼다. 딕은 평생을 실재하는 현실과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물었던 작가다.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철학을 담은 그의 소설들은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등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중 ‘도매가로…’는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모티브로 가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묻는 작품이다. 버호벤 감독은 소설의 실험성을 그럴듯하게 살려낸 SF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당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버호벤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토탈리콜’(15일 개봉)은 원작의 아우라를 계승하기에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이야기의 뼈대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 어느 시점의 지구. 생화학무기를 사용한 전쟁으로 전 세계 대부분이 불모지다. 세계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브리튼 연방’과 ‘콜로니’로 양분돼 대립한다. 콜로니의 평범한 노동자 더글러스 퀘이드(콜린 패럴)는 매일 밤 똑같은 악몽에 시달린다. 누군가에게 쫓기다 총을 맞고 깨어나는 꿈이다. 퀘이드는 완벽한 기억을 심어 고객이 원하는 환상을 현실로 바꿔준다는 ‘리콜사’를 방문한다. 기억을 심는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전 세계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음모가 그를 옭아맨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샤론 스톤이 주연한 원작은 당시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과 독특한 소재로 국내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화성의 가슴 3개 달린 여자, 뚱뚱한 중년 여성으로 변장했던 슈워제네거가 본 모습으로 돌아오는 장면 등이 뇌리에 남는다.
이에 비해 2012년 작품은 진화한 CG를 빼면 논할 게 별로 없다. 식민지 반군을 위해 싸우는 주인공의 행보는 뻔히 예측 가능하고, 결말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듯한 주인공 캐릭터들은 매력이 없다. 미술을 전공한 렌 와이즈먼 감독은 비주얼에 꽤 신경을 썼지만, 이것만으로는 ‘영리하고 까다로워진’ 관객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역부족이다. 주연배우 패럴, 케이트 베킨세일 등의 매력도 슈워제네거나 스톤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
3일(현지 시간) 북미에서 먼저 개봉한 영화의 현지 평가도 호의적이지 않다. 14일 오후 현재 미국 유력 영화 평가 사이트 ‘로튼토마토’(rottentomatoes.com)에서 이 영화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전문가 비중은 30%대에 불과하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87%,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73%를 얻은 것에 비해 현저히 낮다.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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