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란(割卵)검사(계란을 깨 신선도를 측정하는 검사)에 쓸 계란을 고무주걱으로 두드리는 기자에게 축산물품질평가원의 김희원 품질평가사가 말했다. 계란을 깨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라면, 프라이, 스크램블 에그처럼 간편한 요리에는 빠지지 않는 재료 아닌가. 하지만 김 평가사의 의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기자는 계란에 대고 8번째 ‘노크’를 하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계란을 쳤다. 여전히 멀쩡했다. 계란을 쥔 왼손과 주걱을 든 오른손이 민망해졌다. “긴장하지 마시고 주걱 모서리 부분으로 잘 두드려 보세요.” 김 평가사가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안성섭 수석평가사는 답답한 듯했다. “아니 덩치도 큰 사람이 왜 그걸 못 깰까?” 기자의 손동작이 더 어색해졌다. 노른자와 흰자가 다치지 않게 조심해서 껍데기를 깨야 한다는 생각 탓에 긴장한 것일까.
“그냥 책상 모서리에 쳐서 깨면 안 되나요? 그렇게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안 돼요. 그렇게 하면 흰자와 노른자가 터져서 등급 판정을 할 수가 없어요.” 김 평가사가 말했다.
별 수 없이 주걱을 더 세게 휘둘렀다. 그제야 ‘쩍’ 하는 소리를 내며 계란껍데기가 갈라졌다. “젊은 닭이 낳은 알은 껍데기가 두껍거든요. 20∼40주 된 닭에서 좋은 품질의 계란이 가장 많이 나오죠. 그런 계란이라면 보통 사서 먹는 것보다 잘 안 깨질 수 있어요.” 안 평가사가 위로하듯 말했다. 긴장된 몸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듯했다. 10일 오후 찾은 충북 진천군 축산물품질평가원 진천출장소 계란 등급 판정장에서 기자는 ‘햇병아리’일 뿐이었다.
계란 등급제는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2003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신선도에 따라 1+(플러스)와 1∼3등급으로, 크기에 따라서 왕란(68g 이상), 특란(60g∼68g 미만), 대란(52g∼60g 미만) 등으로 구분한다. 여러 농가에서 모인 계란은 지역별 집하장으로 모인다. 집하장에서는 자체 공정을 거쳐 불량 계란을 골라내고 정상인 계란만 제품으로 포장한다. 이 계란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검사하고, 등급 판정 조건을 만족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평가사의 임무다.
○ 노른자 색깔은 맛과 상관없어
기자가 깬 계란이 할란판정기 위에 펼쳐졌다. 샛노란 노른자는 봉긋하게 솟아 있고 그 옆으로 농후난백(점도가 높고 투명한 흰자)이 동그랗게 모여 있었다. “계란이 신선할수록 농후난백의 양이 많고 점도도 높아요.” 안 평가사가 설명했다. 계란은 노른자를 두 손가락으로 꼬집듯 들어도 터지지 않았다. 심지어 이쑤시개를 여러 개 꽂아도 모양을 유지할 정도였다. 신선한 계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눈으로만 봐서는 품질을 보장할 수는 없다. 이제 흰자의 두께를 측정해야 한다. 이것이 계란의 신선도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안 평가사가 삼발이 모양의 측정기를 알끈(노른자와 흰자를 연결해주는 끈)과 1cm 정도 떨어진 곳에 놓고 버튼을 눌렀다. 바늘처럼 생긴 측정기가 흰자를 콕 찍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6.2mm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두께가 5mm 이상이면 신선한 계란이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이제 컴퓨터가 나설 차례다. 흰자 두께와 계란 무게를 종합해 자동으로 신선도를 계산한다. 계란의 신선도는 호유닛(HU·Haugh Units)으로 나타낸다. 호유닛 수치가 72 이상이면 A급으로 분류된다. 검사한 계란 중 A급이 70% 이상이고 D급이 3% 이하면 ‘1+’ 등급을 받는다. 기자가 측정한 계란의 호유닛은 73, 역시 A급이었다.
마지막 단계는 노른자 색깔 측정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전 교육 때 ‘노른자 색깔은 맛이나 영양과는 관계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안 평가사는 “일종의 덤”이라고 말했다. 보기에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다는 것이다. ○ 투광기에서 온몸을 비틀다
계란들은 할란검사를 하기 전 1층에서 육안검사와 투광검사를 거친다. 100∼300개의 샘플을 무작위로 골라 검사를 진행한다. “이곳은 공정이 잘되어 있어서 자체 분류가 잘 이뤄지고 있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계란으로 연습을 해보죠.” 안 평가사가 깨지거나 금이 가 재분류된 계란 한 판을 내려놨다.
기자는 계란을 집어 들고 무작정 투광검사기에 들이댔다. 투광검사기에서 나오는 빛을 빨아들인 계란이 붉게 빛났다. 그런데 눈으로 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실금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신기한 것도 잠시, 다시 쓴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안 평가사가 시범을 보였다. 투광검사를 할 때는 실수로 못 보는 부분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두 손가락만 쓴다. 엄지와 검지로 계란을 잡고 뭉툭한 부분을 위로 해서 투광기에 바싹 붙여 검사를 시작한다. 먼저 뭉툭한 부분에 비치는 기실(알 안쪽에 밀착한 얇은 막이 떨어져 생긴 빈 공간)이 너무 크지 않은지 확인한다. 기실이 클수록 신선도가 떨어지는 알이다. 그 다음 계란을 사선 방향으로 비스듬히 한 바퀴 돌리면서 실금이 갔는지 살펴본다. 기실의 높이가 4mm를 넘지 않고 실금이 없으면 통과다.
안 평가사의 두툼한 손가락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금과 기실도 잘 보였다. 자신 있게 계란을 받아 들고 투광기에 가져다 댔다. 문제는 손가락이었다. ‘분명 내 손가락인데 이렇게 말을 안 듣나.’ 손가락 대신 몸 전체를 배배 꼬아가며 계란 한 개를 살펴보는 데 30초가 걸렸다. 만약 100개를 다 본다면 50분이 걸리는 셈이다. 다른 평가사들의 절반도 못 미치는 속도에 한숨이 나왔다. 초보 평가사에게는 기실과 실금을 볼펜으로 모두 따라 그리도록 시킨다고 하니 그나마 기자의 사정을 봐준 것이었다.
“겉모양만으로도 좋은 계란을 구분할 수는 없나요?” 체험이 끝나고 위생복을 벗으며 기자가 물었다.
“껍데기에 오돌토돌한 큰 점이 있는 계란은 신선도가 떨어질 확률이 높아요. 계란껍데기의 모양이 뒤틀려 있으면 기형일 확률이 높죠. 하지만 껍데기만 보고 계란의 신선도를 완벽히 판단할 순 없습니다.”
“그럼 마트에서는 어떻게 좋은 계란을 고르죠? 깨볼 수도 없고….”
“그래서 저희가 등급제를 만든 것 아닙니까. 등급을 보고 사세요. 허허허.”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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