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코리아/브래드 벅월터]‘情’이 있어 아름다운 대한민국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일 03시 00분


브래드 벅월터 ADT캡스 대표
브래드 벅월터 ADT캡스 대표
한국말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단어가 ‘정(情)’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생기는 감정, 요란하지 않지만 은은하고 속 깊은 감정이 바로 정 아닐까. 영어로는 도무지 번역할 수 없는 이 단어를, 나는 한국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983년 6월 장마 직전에 호남지역을 찾았을 때다. 차를 타고 좁은 논두렁길을 가다가 차가 그만 논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기에 30분 남짓 걸어가서 마을 사람들을 만났고, 상황 설명과 함께 정중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무려 5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소매를 걷고 도와주었다. 그들은 “영차, 영차!” 하면서 힘을 모았다. 그러기를 무려 2시간여, 드디어 차는 도로 위에 올라왔다. 지친 기색도 없이 진흙투성이의 얼굴을 하고는 자기 일인 듯 기쁨에 겨워 환하게 웃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았다. 문화적인 충격 그 이상이었을지 모른다. 미국이라면 어땠을까?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짙은 사회에서 살던 나는 이날 한국인들의 깊고 깊은 정과 따뜻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오래도록 살다 보니 주변 사람을 챙기는 마음과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이후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고,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는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고참’도 있고,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신참’도 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 가운데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한국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이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잘하려면 반드시 한국 사람들과 친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항상 ‘스킨십’과 ‘오픈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한국 사람들과 가까운 곳에서 최대한 많이 대화하고, 그럼으로써 신뢰를 쌓고 그것을 인연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 사람들과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정을 나누는 친한 사이가 되면 비즈니스는 자연스럽게 밝은 색으로 바뀌게 된다.

사실 인연을 쌓았다고 해서 바로 비즈니스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당연하지만 사업의 성과는 비즈니스에 필수적인 여러 요인이 모여 큰 가치를 발휘할 때 이뤄지는 것 아니던가. 생각해 보면 가슴 아픈 기억도 적지 않다. 한국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할 때 서로 기대하는 바가 달라 실패한 경험도 꽤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절망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한국인들을 좋아하고,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이 나라를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자랑하고픈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있는 한국인들이 훨씬 더 많은 까닭이다.

미국인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독립을 하기에 가족 간의 유대나 부모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이 훨씬 약하다. ‘정’이라는 것은 거의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한국은 가족 간의 유대감과 정, 사랑이 풍부하다. 나는 이런 한국적인 가족 문화, 정 문화가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숨은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세대가 흘러감에 따라 이런 한국 사람들의 정을 나누는 문화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함께 나누고 어울리며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정 문화를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길 소망한다. 정이 있어 아름다운 대한민국 아니던가.

브래드 벅월터 ADT캡스 대표
#정#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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