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필자가 한국에 살면서 항상 궁금했던 점이다. 근면한 국민성, 지도자들의 역할과 기여, 높은 교육열과 기술투자 및 정부정책의 타당성 등을 꼽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 학생들은 거의 매일 과외수업을 하고 오후 10시나 돼야 집으로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설마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대부분이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문화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새벽에 운동하러 갈 때나 늦은 밤에 집으로 갈 때 교복을 입고 급한 걸음으로 다니는 학생들과 자주 마주친다. 이들의 살인적인 공부 시간은 지금도 놀랍기만 하다. 필자도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다문화가정의 외국인 어머니들이 자녀들 학원 문제로 필자에게 조언을 구하면 몇 가지 과목을 이러이러하게 보충하라고 답하게 된다. 영어 등의 어학, 태권도나 발레 같은 체육활동, 거기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음악활동까지 하는 한국 학생과 어울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은 이상주의자나 할 법한 말이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대부분 비싼 휴대전화(일부는 100만 원씩이나 하는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를 들고 다닌다. 또 많은 대학생이 유명 브랜드 가방을 들고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학교의 학생들이 그런 것들을 사고 싶다고 하면 사치라고 하면서도, 막상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요구하면 성화에 못 이겨 사치성 물품을 사줄 것도 같다. 한국은 새로운 유행(Trend)에 지극히 민감하다. 모든 사람이 유행에 따라 사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전 국민에게 알려지고 대부분이 거기에 참여한다. 유행에 뒤떨어진 사람은 이방인 취급을 하는 것 같다.
요즘 서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거의 모든 승객이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인터넷, 채팅, 문자, 게임 등을 하느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예전엔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이 많았는데…. 불과 몇 년 새 달라진 풍경이다. 온라인 게임 열풍도 전 연령층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필자가 지인의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60대인 지인이 컴퓨터 바둑게임을 한다면서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게임이 끝나고서야 지인이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젊은층만 온라인 게임을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의 교육열이나 소비행태, 디지털 문화 등 유행처럼 번지는 이런 모습을 비판하는 시각은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유행을 따르는 것은 필자가 늘 궁금해한 한국의 숨겨진 힘인 것 같다. 최근 한국의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 싸이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며 한국과 한국문화를 알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 보면 한국인의 교육열이 저런 인재를 배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국의 전자회사들이 스마트폰, TV 등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경쟁력 뒤에는 학생들의 소비행태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온라인 게임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인이 세계 온라인 게임시장을 주도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필자와 같은 교육학자들이 빠지기 쉬운 사고의 함정은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경험과 지식만을 후학에게 강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칫 좁은 세계관에 갇혀 발전이 없게 될까 두려워할 일이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폭넓게 변하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유행을 발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포용능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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