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군필자 톡톡]대한민국 군대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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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 막내땐 시부모 20명 모시고 살아… 화장실서 빵 먹으며 사회를 배웠다
시급보다 적은 일당 3000원은 너무해… 18개월 군대? 그동안 뭘 배우겠나!

《 남자들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군대 이야기 아닐까요. 군필자들이 모이면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야”라는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조감도 듭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했던 소중한 청춘을 누군가는 “제초제보다 싼 인력들이 풀 뽑다 오는 시간”이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청년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동아일보 인턴기자인 노지민(성신여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이정규 씨(동국대 사회학과 4학년)가 2030 남성들을 만났습니다. ‘군대’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남자들도 할 말이 터져 나옵니다. “다시 가라고 한다면 죽어도 안 가지만, 한 번은 가볼 만하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고위층이 기를 쓰고 자식을 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악몽 중 최고는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 공익요원들은 “남자들끼리 있으면 꼭 공익이냐 아니냐로 편 가르기 하려고 한다”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17년까지 사병 월급은 두 배로 올리고, 군복무 기간을 현행 21개월에서 18개월로 줄이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군필자들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
○ 좋든 싫든 ‘사회’를 배웠다

제아무리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남을 제압하고 사람을 이끌어야 한다. 소심한 사람들이 리더십을 기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군대다. (21·대학생)

세상을 보는 눈이 디테일하게 바뀌었다. 대충 하는 것처럼 보여도 쉬운 일이 없다. 속옷 접는 방식에도 규칙이 있다. 욕먹으면서 배웠다. 무슨 일이든 허투루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미필자들은 사회생활을 모른다. 답답하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27·대학생)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이등병 때 화장실에서 몰래 초코파이 먹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등병은 아무것도 할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 짬밥(연륜 또는 계급)이 안 되면 생각할 자격도 판단할 자격도 없다는 게 군대의 상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참아내고 조금씩 계급이 올라가면서 사회의 권력구조나 계급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21·대학생)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가 있다. 군대 문화를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는 영화다. 주인공은 제대 후 자살한다. 군대 문화를 못 견뎌 했지만 동화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상명하복 질서에 동화되면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31·대학원생)

학벌도 좋고 착한 후임이 있었는데 강압적인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갔다. 후임들을 ‘갈구지(괴롭히지)’ 못하고 자기가 모든 일을 다 맡아서 한 것이다. 종종 자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28·대학생)

군 간부들이 기름을 빼돌려서 훈련병들이 겨울에도 덜덜 떨며 찬물로 샤워를 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도 이의 제기를 못했다. 그 위계질서라는 것 때문에 불합리한 문제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 (27·회사원)

어디 가서 육두문자의 욕을 들어 보겠나.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다. 나름 소중한 경험이다. (24·대학생)

총 개머리판 뒷부분으로 배를 맞았다. 모멸감이 들었다. 참았다. (27·대학생)

이등병 땐 20명의 ‘시부모’를 받들며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에서 빨리 적응하는 사람이 군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을 대하는 법도 배웠다. 밑바닥 같은 생활을 하면서 나를 다시 돌아봤던 기회가 됐다. (28·취업준비생)

24시간 매 순간을 동료와 먹고 자고 생활하고 붙어 다닌다. 가족보다도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는 존재다. 타인이 소중하다는 걸 처음 경험했다. (30·취업준비생)

이등병 때 한동안 ‘도깨비 병’이라는 것에 걸렸다. 밤마다 열병이 나는 건데 억지로 참으며 지냈다. 새벽근무를 가기 전 몸이 안 좋아서 눈을 붙였는데 일어나니 아침 기상시간이었다. 한 선임이 새벽 내내 한숨도 못 자며 내 시간까지 근무를 섰다. 평소에 화만 내고 가장 무서웠던 선임이라 엄청 감동 받았다. 조직에서 아랫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배웠다. (27·회사원)

군 입대 전 가족들과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편지를 주고받았다. (21·대학생)

복무 중에는 ‘제대하면 이 비리를 꼭 소원수리에 쓰고 나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제대할 때가 되니 ‘나는 나가면 그만이지만 남은 후배들이 고생하겠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대부분의 선배들도 그랬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알려지지 않아 개선이 되지 않는다. (28·휴학생)

○ 잃어버린 시간? 제대하니 막막했다

내가 이등병일 때까지는 부대 내 PC방인 ‘사지방(사이버지식정보방)’ 같은 것도 없어서 외부 소식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대통령을 뽑을 때 공약이 뭔지도 모르고 뽑았을 정도다. 바깥세상과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 보니 사회인이 아니라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27·회사원)

군복무 중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생겼다. 사회 트렌드에 뒤처지는 기분이어서 휴가 나와서 스마트폰과 SNS 사용법을 따로 공부했다. (27·대학생)

제대할 때 되면 병장이라 군대에서는 왕인데, 갑자기 사회에 나가야 되니까 막막하다. 돈 걱정을 하나도 안 하다가 등록금 낼 생각, 용돈 벌 생각을 한다. 남자들은 ‘군대 다녀오면 손 벌리지 말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다.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고민했다. (32·취업준비생)

제대하면 아무런 무기도 없이 순수하게 맨몸으로 나온다. 장래에 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사회에 무작정 내던져진다. (26·대학생)

제대해 보니 기계공학과 동기들이 모두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외환위기 후폭풍이었다. 공대에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자퇴했다. (35·선교사)

솔직히 2년이 아깝다. 남자는 군대 2년 동안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제대해도 길게는 1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28·취업준비생)

여자들은 보통 24, 25세부터 돈을 번다. 남자는 27세가 되어야 돈을 번다. 군필자라고 대우해 주는 것도 아니다. (24·공무원 준비)

군대 다녀오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군대에서는 밥 걱정, 일 걱정 안 했다. 제대를 앞두고 부사관을 신청하는 것도 경쟁률이 세다. (27·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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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모이면 군대 얘기냐고? 우리도 ‘힐링’ 받고 싶어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2년간 국방의 의무를 무사히 마쳤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당시에는 죽도록 힘들었지만 다녀오고 나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일부러 군 면제를 받거나 공익근무를 하기 위해서 자해를 하는 사람들이 같잖아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끼리끼리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다. (27·회사원)

남자들끼리 모이면 공통된 주제가 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여자, 게임, 당구, 가끔은 정치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군대 이야기 외에 오랜 시간 신 나게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우려가면서 계속하는 이유다. (28·취업준비생)

입대 전에는 술집에서 ‘빡빡이들(군인들)’끼리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지금은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군대에서 겪은 안 좋은 일들은 혼자 삭이기가 힘들다. 여자들한테 얘기해 봤자 뭐가 뭔지 알겠나. 군필자가 아닌 사람과도 말이 안 통한다. (21·대학생)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만나면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하고 대학교 혹은 대외활동을 같이했던 친구들끼리 만나도 추억 혹은 경험이 비슷하기 때문에 화제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25·대학생)

현역 나온 사람들끼리 친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자들과 있을 때는 굳이 물어보지 않는 한 얘기하지 않는다. (30·취업준비생)

○ 월급 인상, 복무 기간 단축…? 어떻게 생각해

군인 친구들이 월급 올랐다고 자랑한다. 그래봤자 11만 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노동을 하는데 말이다. 삽질하고 지뢰 찾고, 눈 치우고 풀 뽑고 건물 보수하고. 북한이랑 뭐가 다른가. 강제노역이다. (22·대학생)

지금 월급 수준으로는 간식 몇 번 사 먹고 필요한 물건 사는 것도 빠듯하다. 선임이 되면 후임들도 챙겨야 한다. 물가는 엄청 오르는데 월급은 찔끔 올려서야 되겠나. (27·회사원)

담배를 피우거나 여자친구가 있는 군바리들은 항상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다. 전화요금도 많이 들고 담뱃값도 바깥이랑 똑같다. 시급 4000원대 시대에 일당 3000원이 뭔가. 돈 받으려고 군대 가는 건 아니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받을 수밖에 없는 월급 수준은 문제다. (21·대학생)

복무 기간이 21개월로 줄었는데도 다들 군대가 제대로 안 돌아간다고 말한다. 이제 배워서 쓸 만해지면 제대할 때가 다가오니까 해이해진다. 그런데 고작 18개월 배워서 뭘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21·대학생)

군복무를 18개월로 줄이는 건 포퓰리즘이다. 군복무가 짧아지면 뭔가 익히기도 전에 전역한다. 군 생활을 한 번 줄이는 건 쉽지만 다시 늘리긴 어렵다. (27·교사)

군병과가 제대로 주특기를 배우는 시기가 15∼18개월이다. 더 줄어들면 주특기를 활용하지 못한다. 군대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한다. (22·대학생)

군복무 오래 해봐야 입대 초에 들었던 군기만 빠진다. 요즘 군대가 군대냐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군대는 이병만 1년, 일병만 6개월 하고 전역해야 한다. 고생만 하다 나오게 해야 되는데 지금은 시간만 때우다 지루함과 싸우다 나오는 거다. (30·대학생)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군사적 특수성 때문에 현대식 무기 도입으로 군 인력을 감축하는 것을 감안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전쟁은 무기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끼리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25·대학생)

복무 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월급은 40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 하루에 1만 원은 되어야 저축도 하면서 맛있는 거 사 먹을 수 있다. (22·대학생)

전쟁을 대비하는 나라에서 사병 수를 줄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차라리 군복무 단축보다는 사병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리고 월급을 어느 정도 올려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28·취업준비생)

난 끝났다. 군대에 대해서 더이상 할 말이 없다. (남은 사람들은) 열심히 나라를 지켜 달라. (26·대학생)

[채널A 영상] 동성애 병사 자살’ 무엇이 문제였나? 군 내부 실태는…

정리=노지현 오피니언팀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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