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일 씨(38)는 경남 창원에서 7세 어린이가 태권도학원 통학차량에 옷이 끼여 끌려가다 숨졌다는 뉴스를 듣는 순간 수저를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숨진 강준기(가명·7) 군 가족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가슴에 또 한번 큰 구멍이 나는 듯했다.
다섯 달 전의 기억이 온몸을 휘감았다. “여보! 애가 학교버스에 치였어! 병원인데 숨을 안 쉬어!” 지난해 9월 3일. 전화기 속의 아내는 울부짖고 있었다. 전화기를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 침대 위에 아들이 누워 있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어가다 스쿨버스에 치였다. 인솔 교사도 없었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멍하게 천장만 바라볼 때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들 얼굴 위로 하얀 시트를 덮었다. 그렇게 조 씨 삶의 전부였던 외동아들은 떠나갔다.
“자식을 통학버스에 잃은 부모의 심정은 상상조차 못할 겁니다. 아내는 더이상 차를 타지 못하고, 외출도 거의 안 합니다. 노란색 차를 볼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손자를 잃은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요.”
강 군의 죽음이 이 땅 모든 부모의 가슴을 때리고 있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주부 서모 씨(37)는 “내 자식을 잃은 듯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했다. 세 자녀를 둔 주부 신모 씨(48)도 “얼마 전에는 성폭행이 난리치더니 이제는 통학차량이냐”며 “학부모들은 이럴 때마다 불안에 떨면서 아이들에게 차 조심 하란 소리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도 들끓고 있다.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 자녀들이 사고를 당해야 법을 바꿀 텐가”, “제발 학원차에 사고 당하는 아이들 소식은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 등 분노와 슬픔을 담은 댓글과 트윗들이 28일 온종일 올라왔다. ▼ 똑같은 사고 계속 되풀이되는데… 똑같은 대책만 재탕 삼탕 ▼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어린이 통학 교통사고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감지한 듯 정부와 교육당국도 서둘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사고 다음 날 “60여 명으로 특별점검반을 꾸려 3월 한 달간 집중 점검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통학차량 운전사 교육을 강화하고 특별단속을 실시하겠다”고 28일 발표했다.
그러나 마치 오래전 신문의 스크랩을
다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4년 4월 경남 산청군에서 6세 한모 양이
통학차량에서 내렸다. 인솔교사는 없었다. 혼자 내린 한 양은 차 앞으로 걸어갔고 운전사는 이를 모른 채 가속페달을 밟아 한 양을
치어 숨지게 했다.
그때도 경남도교육청은 “인솔교사를 반드시 차량에 탑승시키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우리 사회는 늘 그랬다. 사고가 터지면 관련 기관이 급조된 대책을 발표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됐다.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져 갔다. 그리고 또 비슷한 사고가 터지고, 다시 비슷한 내용의 사고 대책을 발표하곤 했다.
“어린이 승하차 때 운전사가 안전을 확인하도록 하겠다”는 대책은 행정안전부가 2001년 발표한 뒤 매년 나왔다. “인솔교사
탑승을 의무화하겠다”는 대책도 건설교통부가 2001년 발표했고 경남도교육청, 보건복지부 등이 돌아가면서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재탕했다.
경찰의 ‘집중 단속’도 단골 대책이다. 올 1월 경남 통영에서 초등생이 통학차량 문에 옷이 끼인 채
10m 이상 끌려가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남경찰청은 “2월 한 달 동안 통학차량 운전사의 안전의무 위반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집중 단속 기간에 인근인 창원에서 강 군이 숨졌다. 정부가 내놓은 또 하나의 대책은 ‘광각
후사경 장착 의무화’였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강 군을 숨지게 한 태권도 학원 차량에는 광각 후사경이 없었다.
광각 후사경이 없으면 내리던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옷이 끼여 있더라도 키가 작기 때문에 운전사가 운전석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초등생이 통학버스 문틈에 옷이 끼인 채 끌려가다 숨지는 사고는 연례행사처럼 일어난다. 지난해 11월 21일에도 충북 청주에서
아홉 살 곽모 양이 통학차량 문에 끼인 채 10m 넘게 끌려가다 숨졌다. 2010년 1월 11일 광주 북구 일곡동, 2007년
4월 3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도 같은 사고로 어린이들이 죽었다.
사고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반칙’도
판박이처럼 똑같다. ①인솔교사나 운전사가 차에서 내리지 않고 ②어린이가 혼자 차 문을 열고 내리다가 ③문을 닫을 때 코트
옷자락이나 태권도복 등이 문에 끼였고 ④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운전사가 차를 출발시키자 ⑤끌려가던 어린이가 통학차량 바퀴에 깔리거나
주위의 다른 차량에 부딪혔다.
전문가들은 통학차량 운전사와 학교 및 학원의 안전법규 위반 행위에 대해 특단의
의지를 갖고 엄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 14만여 대의 통학차량을 일일이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 없다면 ‘일벌백계’ 효과로
다스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천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법 개정을 통해 사고 낸 통학차량 운전사와 관리자를 예외
없이 형사처벌하고 징역을 살게 해야 반복되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린이가 숨져도 가해 운전사가
보험에 들었고 피해자 가족과 합의한다면 대부분 벌금형으로 끝나는 게 현실이다. 부주의한 운전으로 어린이가 숨졌는데 가해 운전사는
멀쩡히 돌아다니는 상황을 부모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김영례 서울녹색어머니회 회장은 “애초 법을 위반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무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택·장선희 기자 nabi@donga.com ▼ 전직 학원車 운전사 참회록 ▼
40대 중반의 대리운전 기사 김모 씨가 28일자 동아일보의 ‘학원차 반칙운전’ 기사를 보고 다시는 자신 같은 학원 차량 운전사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자청했습니다. 이 ‘참회록’은 김 씨 인터뷰를 바탕으로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2005년 다니던 회사가 파산해 15인승 승합차를 사서 어린이집 통학차량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8시부터 12시간 동안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지만 받은 돈은 한 달 160만 원. 기름값을 빼면 100만 원 남짓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결국 밤에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3, 4시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항상 피곤했습니다. 틈만 나면 어린이집
차에서 눈 붙이기 바빴고 멍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죠. 아이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서둘러 일을 끝내려다보니 인솔
교사가 타지 않았는데 출발한 적도 있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황당한 듯 저를 쳐다보던 어린이집 선생님의 눈빛에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내 아이들도 어린이집 차를 타고 다닐 텐데…’란 생각에 더이상 무리하게 통학차량 운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5개월 만에 그만뒀지만 그동안 큰 사고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란 생각뿐입니다.
지금도 새벽 시간 신논현역에 가면 학원 이름이 붙은 승합차들이 쉴 새 없이 대리운전 기사들을 실어 나릅니다. 그 차 운전사들은 해가 뜨면 다시 어린 생명을 싣고 달릴 것입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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