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6년에 처음 한국에 왔다. 한국의 그때와 지금은 여러 면에서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서울타워(현 N타워)는 있었지만 63빌딩은 없었다. 서울대는 현재의 관악산이 아닌 창덕궁 옆에 있었는데, 인근 동숭동 근처에서는 데모가 자주 벌어지곤 했다. 그 시절에는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연을 날리고 있네’라는 노래처럼 추운 겨울에도 연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눈이 올 때 스키 타러 가는 사람은 일부 대학 동아리 학생 정도밖에 없었고, 등산을 여가로 즐기는 이도 거의 없었다. 산에 가는 것은 그저 약수를 뜨러 가는 것이었다. 아마 지금처럼 건강을 생각해서 등산을 즐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국민은 먹고살기 위해서만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면 어차피 산에 올랐더라도 지금만큼 산책하면서 즐길 수 있는 예쁜 등산 코스라는 것도 없었다. 시내에는 빌딩은커녕 작은 집과 건조한 맨땅뿐이었다. 나무는 전쟁 때 많이 없어진 데다 온돌을 데우는 땔감으로 쓰다 보니 서울 시내와 근교에서는 열매가 나는 감나무를 빼곤 푸른 나무를 보기가 어려웠다. 젊은 사람들은 삭막한 데다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이 보이지 않았던 그 시대를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지금 한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환경도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앞에서 묘사한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변화 외에도 한국 사회가 국제화되면서 다른 큰 변화도 동시에 많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히 옛날과 달라진 것들, 예를 들면 언어의 변화가 그렇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살아보니 언어 습관들이 꽤 많이 달라진 걸 느낀다.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든다면 1970년대나 1980년대 한국인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안 했는데 요즘에 와서 그 말을 자주 들을 수 있게 됐다. 만약 그 표현이 일상 회화에서 나타나는 빈도를 조사하면 아마도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애인끼리 서로 대화할 때도 사랑한다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간단히 표현하고, 방송에서도 연예인들이 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
다시 말해 ‘사랑해요’ ‘행복해요’같이 과거에는 말하기 쑥스러워했던 표현들이 매우 흔해지고,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옛날보다 훨씬 더 생활화됐다. 어찌 보면 프랑스에서보다 더 많이 쓰인다고 생각될 정도다. 쉽고 순한 한국말로 된 그 짧은 문장으로 자기 마음을 간단히 표현할 수 있으니 편리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말을 많이 쓰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 과거 기성세대와 지금의 젊은 세대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서로 다른 것인지도 궁금하다. 흔해진 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예전보다 많아졌을까? 혹시 하도 많이 듣는 바람에 그 말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Je t'aime”(사랑한다)를 많이 쓰는 프랑스 출신인 만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좋지 않다거나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옛 유교사상이 더 낫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지속된 문화와 생활습관이 완전히 변해버린 현상이 어쩌면 요즘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세대 간의 격차나 소통의 문제를 야기한 게 아닌지 가끔 궁금해진다.
아무리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는 너무 빨리, 그리고 깊은 분석 없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는 경제가 발전하고 서구 문화가 빠르게 유입돼 정착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당연한 변화이겠지만 한국 전통의 고유함이나 좋은 점들은 잃지 않으면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것이 한국의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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