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아지 키우시나요? 현재 개를 기르는 가정은 전체의 16% 정도로 추산됩니다(2012년 10월 한국사회경제연구원 조사). 10집 중 한두 가정이 키우고 있는 셈입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면서 개를 둘러싼 문화에도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처럼 인간보다 나은 의식주를 향유하는 견공들도 있지만 비참하게 버려지는 개들도 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개는 약 10만 마리에 이른다고 합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개까지 더하면 그 수는 훨씬 많겠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올해부터 반려견을 대상으로 한 동물등록제를 본격적으로 시행 중입니다. 인구 10만 명이 넘는 시군에서는 견주가 동물병원을 통해 반려견을 등록해야 하는데, 7월부터는 등록하지 않은 견주에게 100만 원 미만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이용우(동국대 법학과 졸업) 노지민(성신여대 중어중문과 졸업) 동아일보 인턴기자들이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 생활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반려견 문화를 들여다봅니다. 》 자식보다 강아지가 낫다
○자식들이 다 독립하고 혼자 살고 있는데 강아지는 자식처럼 소중한 존재다. 죽기 전에 키우는 나 대신 개를 키워 줄 사람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에게 사료비와 미용비 등 키우는 데 쓸 돈을 주고, 단골 동물병원에는 나중에 들어갈 치료비까지 미리 줄 예정이다.(89·여)
○10여 년 전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자 우리 남매가 상처 받을까 봐 어머니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그 개가 지금 키우고 있는 몰티즈다. 집안 분위기가 안 좋은 시기에 우리 가족은 개 덕분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27·여·대학생)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뛰어나가는 게 강아지다. 어머니나 우리는 잘해야 “오셨어요?” 하고 자기 방에 쑥 들어가지만 강아지는 꼬리 치고 눕고 갖은 아양을 다 떤다. 아버지가 “애들보다 개가 더 낫다”고 하시는 경우가 많다.(27·여·대학생)
○동물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고 재지 않는다. 인간사는 주고받는 걸 철저하게 계산하는데 개는 그렇지 않다. 그저 밥을 준 게 전부인데 주인이면 무조건 따르고 좋아해 준다. 웬만한 사람보다 내게는 더 소중하다.(27·여·회사원)
○개 두 마리를 키우다가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지금 화장한 유골을 가지고 있다. 두 아이들과 교감이 너무 커서 죽으면 함께 뿌려 달라고 유언으로 남길 거다. 개들은 내가 힘들면 직감적으로 알고 위로해 줬다. 울면 울지 말라고 내 눈물을 핥아 줬다.(34·여·회사원)
○말 못 할 고민이 있을 때나 슬퍼서 울고 싶을 때 방에서 강아지에게 얘기하면서 운다. 내 이야기를 말없이 다 들어 주는 친구다.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누구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을 수 있겠나.(22·여·대학생)
○개가 많이 아파서 지방에서 서울에 있는 동물종합병원까지 다녀야 한다. 그런데 지방에서 서울까지 오려면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다. 캐리어에 넣고 타면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는데도 버스 운전사가 개는 안 된다며 내리라고 하고, 때로는 버스 짐칸에 실으라고 하더라. 병든 강아지를 짐칸에 실으면 죽는다. 그때마다 버스 운전사에게 손을 싹싹 빌면서 사정했고 담뱃값도 쥐여줬다.(89·여) 개 팔자가 상팔자
○과거 동물병원에서는 귀 성형과 중성화 수술을 주로 했다. 그러나 이제 심장병이나 결석, 피부 질환이나 비만 등 노환 관련 질병을 많이 다룬다. 또 예방접종도 보편화돼 전염병도 사라지고 있다. 그 덕분에 평균적으로 동물병원을 찾는 개들도 고령화됐다.(45·동물병원 원장)
○애견숍, 동물병원, 애견호텔(위탁소)까지 운영하고 있다. 애견 사업에 뛰어든 대기업도 꽤 된다. 애견 인구가 많아지면서 관련 산업도 발전하고 있는데, 사료의 경우 비쌀수록 좋아하니까 가격도 많이 올랐다.(34·여·애견숍 총괄실장)
○개가 선천성 피부병이 있다 보니 아무리 조심해도 1년에 두세 번씩은 병원에 가게 된다. 한 번에 보통 일주일 정도 병원에 다니는데 50만 원 이상 돈이 든다.(27·여·대학생)
○외국에서 강아지를 한국으로 데려올 때 참 힘들었다. 개는 비행기를 타면 몸에서 열도 많이 나고 힘들어한다. 게다가 비행기 삯과 예방주사 등으로 돈도 많이 든다. 공항에서 만날 때 마치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것 같았다.(24·여·대학생)
○털, 발톱을 관리하는 비용과 사료비, 병원비 등 강아지를 키우려면 한 달에 10만 원은 기본으로 나간다.(29·회사원)
○요즘은 개 사료도 유기농이 많다. 대부분 5만 원 이상이다. 그걸 일주일에 한 번씩 산다. 개는 가족인데, 가족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23·여·애견카페 직원)
○애견 미용에도 유행이 있다. 과거에는 발 부분 털을 풍성하게 하고 귀에 염색하는 게 유행이었는데 이제는 볼에 난 털을 강조하고 발끝 부분에만 살짝 염색하는 경우가 많다. 또 ‘부(BOO·페이스북을 통해 유명해진 포메라니안 강아지)’가 인기를 얻으면서 그와 닮게 얼굴 부분을 동그랗게 해 달라는 요청이 늘었다.(34·여·애견숍 총괄실장)
○집이 부도나서 식비가 떨어졌어도 개가 아픈 거는 그냥 내버려 두지 못하겠더라. 집에 있는 도자기까지 팔아서 병원비 댔다.(27·여·대학생) 생명은 장난감이 아니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근이’라고 불리는 그레이트 피레네가 인기를 끌면서 너도나도 대형견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큰 개를 키워 보니 관리가 힘들어 많이 내다버렸다. 안락사 된 그레이트 피레네가 늘었다고 한다.(23·여·애견카페 직원)
○이성 친구에게 기념일 선물로 개를 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헤어지면 키우기 힘들다고 버리기도 한다. 제발 생명을 선물로 주고받거나, 이를 가벼이 여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27·여·대학생)
○“이거 무슨 종(種)이에요?”라며 무슨 브랜드처럼 물어보는 게 싫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좀 비싼 종을 보는 눈은 다르다. 혼합종을 키우면 “어디서 주워 왔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사랑을 주면서 키우면 반려 동물이다. 품종에 따라서 차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27·여·대학생)
○집과 일하는 애견카페에서 데려온 개를 여럿 키운다. 개들도 자기가 원 주인에게 버림받은 걸 안다. 그런 개들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밥도 잘 못 먹는다.(23·여·애견카페 직원)
○온라인 쇼핑몰에서 간식을 사서 개한테 주었더니 먹자마자 마구 토했다. 애견 간식에 질이 떨어지는 중국산 재료나 방부제를 넣었기 때문이다. 개도 생명인데 먹을거리에 장난을 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24·여·대학생)
○애견카페에 여자친구와 함께 온 남자 손님 중에는 개를 때리거나 훈계하는 경우가 있다. 꼬리를 흔들며 다가간 강아지는 봉변당한다. 또 어린아이들이나 장난기 많은 어른들은 개를 약 올리느라 간식을 던진다. 서로 간식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다 다치기도 한다. 대체 왜 약한 개를 상대로 그런 장난을 치는지 이해가 안 된다.(29·애견카페 주인)
○몰티즈, 시추, 요크셔, 푸들 이 네 가지 견종을 가장 선호한다. 털이 잘 안 빠지고 소형견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사람들이 작을수록 좋아하니까 작은 견들만 골라서 교배를 시킨다. 동물의 세계였더라면 도태됐을, 열성 인자를 타고난 개끼리 자꾸 교배시키니까 점점 약한 개가 많아진다. 녹내장, 다리뼈 탈골, 심장 질환 같은 병들은 이런 교배 때문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 사람의 이기심이 만든 결과다.(45·동물병원 원장) 반려동물등록제에 대해
○일단 그런 제도가 실시되는 것을 알고 있는 견주가 별로 없다. 제대로 정착만 되면 잃어버렸을 때 찾기도 쉽고 함부로 버리는 경우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등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개를 키우고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의문이다. 내장형 전자칩을 몸에 심을 경우 강아지의 몸에 부작용이 생긴다는 말도 들었다.(56)
○몰티즈를 5년째 키우고 있다.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목에 걸린 이름표 때문에 찾을 수 있었다. 반려견 등록제가 실시되면 우리 사회 반려동물 문화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 홍보가 너무 안 돼 있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이 필요하다.(45·주부)
○개 병원비가 사람보다 더 많이 든다. 비싼 의료비는 유기견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다. 유기견 때문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한다면 애견 의료보험 제도가 정말 필요하다. 그게 안 된다면 전국의 애견인들이 조합을 구성해서 자체적인 의료보험이라도 만들면 좋겠다.(59·택시운전사)
○의사가 의료사고를 내면 큰 문제다. 그런데 수의사는 그런 게 없다. 의료사고 때문에 개를 죽였다 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소유주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다. 가족으로 함께 지냈던 시간들은 인정하지 않는다.(55·여·주부)
○지난해 키우던 개가 병에 걸려 죽었는데 멀리 경기 김포에 있는 동물 화장터를 찾아가 20만 원을 주고 화장했다. 우리나라는 동물을 위한 화장 시설이 부족하다. 이런 시설이 많이 늘면 좋겠다.(37·여·회사원)
○현행법상 키우던 개가 죽으면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한다. 그런데 가족 같은 동물을 어떻게 쓰레기통에 버리겠나. 사후(死後) 처리 시스템이 필요하다.(27·여·회사원)
○유학을 하면서 선진국 애견 문화가 많이 부러웠다. 개가 길에서 대변을 보면 치워야 하고, 산책은 하루에 한 번은 시켜야 하는 등 동물에 대한 법이 많았다. 본인이 시간이 안 되면 봉사 활동하는 사람을 두어서 산책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보니 일부 몰상식한 사람들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까지 욕먹는 것 같다.(24·여·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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