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8일 개봉 ‘죽지 않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7일 03시 00분


좌우갈등보다 아픈 세대갈등

영화 ‘죽지 않아’는 한참 웃다가 극장을 나오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드는 우리 사회의 우화다. 씨네굿 제공
영화 ‘죽지 않아’는 한참 웃다가 극장을 나오면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드는 우리 사회의 우화다. 씨네굿 제공
8일 개봉하는 ‘죽지 않아’는 발칙한 영화다.

해병대 대령 출신인 70대 할아버지(이봉규)는 암을 이겨낸, 그야말로 ‘죽지 않아’다. 손자 지훈(차래형)은 재산을 탐내 시골로 내려가 할아버지를 모신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시 검은 머리가 난다”고 할 만큼 정정하다. 4년을 수발하다가 지친 지훈은 서울로 올라와 친구들과 어울린다.

지훈은 친구의 소개로 만난 섹시한 여자 은주(한은비)와 하룻밤을 보내며 “할아버지를 복상사시키면 돈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설마 했는데, 시골로 다시 내려온 지훈 앞에 은주가 나타난다.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흘리던 은주는 서서히 할아버지를 유혹한다. 지훈과 할아버지, 그리고 ‘팜 파탈’ 은주의 기막힌 동거가 시작된다. 코믹으로 시작된 영화는 지훈과 은주 사이의 심리적 긴장감을 담은 스릴러로 흐른다. 은주가 30억 원이 넘는 할아버지 재산 중 일부에 대한 상속을 약속받자 지훈과 은주의 갈등은 깊어간다. 지훈은 킬러를 고용해 두 사람을 살해하려고 한다.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관객의 허리를 곧추세우게 만든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영화는 한국 사회의 세대갈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지훈은 폼 나게 사는 게 인생 목표의 전부인 ‘찌질한 88만원 세대’다. 386 운동권 출신인 아버지는 사회적 소명은 다했을지 모르지만 자식 농사도, 부친과의 관계에도 실패한 인물이다.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 근현대사의 질곡을 가로질러 온 할아버지는 경험의 한계에 매몰된 사회적 괴물이다. 영화는 좌우 갈등보다 심각한 세대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아픈 상처를 찌른다.

영화를 보면 저예산 영화는 재미없다는 편견은 깨져야 할 것 같다. 제작비 500만 원에 불과한 이 영화는 심각한 주제 의식에 매몰돼 관객을 메시지까지 유인하지 못하는 저예산 영화의 한계를 극복한다. 메가폰을 잡은 황철민 감독(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은 2일 시사회 뒤 “‘죽지 않아’는 우리 사회를 비춘 지독한 우화”라며 “어디에선가 본 듯한 이야기가 아닌 한국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황 감독은 독일 오스나브뤼크대에서 사회학과 영화학을 전공하고 베를린국립영화아카데미를 졸업했다. 졸업 작품인 ‘빌어먹을 햄릿’(1997년)은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받았고, ‘프락치’(2005년)는 로테르담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다. 그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2009년)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 ‘죽지 않아’는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우수 한국 영화에 주어지는 LG하이엔텍상을 받은 작품이다. 18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프리뷰#세대갈등#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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