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병없던 뚱보男, 갑자기 혀 꼬이고 반신 마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9일 03시 00분


[내 몸 안의 시한폭탄 대사증후군]<2>뇌중풍 불러오는 주범

대사증후군은 ‘인슐린 분비 저하→혈관에 독성물질 축적→동맥경화’의 과정을 차례로 거치면서 뇌중풍을 일으킨다. 뇌중풍을 앓고 있는 대사증후군 환자가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하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대사증후군은 ‘인슐린 분비 저하→혈관에 독성물질 축적→동맥경화’의 과정을 차례로 거치면서 뇌중풍을 일으킨다. 뇌중풍을 앓고 있는 대사증후군 환자가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하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정모 씨(38)에게 6월 중순 갑작스러운 마비가 찾아왔다. 갑자기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발음이 줄줄 새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며칠 뒤부터는 오른쪽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한 발짝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놀란 마음에 정 씨는 집 근처 대학병원을 찾아 입원했다. 담당 의사는 “뇌중풍(뇌졸중)으로 인해 마비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평소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던 정 씨가 갑작스러운 뇌중풍을 겪게 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정 씨를 진료한 정진만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정 씨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비를 동반한 중증 뇌중풍을 앓게 된 원인은 바로 ‘대사증후군’ 관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사증후군이란 복부 비만, 고혈압, 혈당장애, 고중성지방, 낮은 HDL콜레스테롤 등 5가지 위험요소 중 3가지 이상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정 씨는 심각한 복부비만, 고혈압과 함께 당뇨병까지 앓는 대사증후군 고위험군에 속하는 환자였다.

○ 뇌중풍 위험 2배 가까이로 높여

최근 의료계는 정 씨처럼 대사증후군이 뇌중풍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점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핀란드 큐오피오대 병원이 2006년 실시한 연구에서는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는 남성이 뇌혈관이 막히는 ‘허혈성 뇌중풍’이나 뇌혈관이 터지는 ‘출혈성 뇌중풍’을 앓을 위험성은 정상 남성보다 평균 1.82배, 허혈성 뇌중풍만 따지면 평균 2.16배 이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양현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한국인 4명 중 1명(23.2%)이 대사증후군 증상을 앓고 있다는 동아일보와 고려대의료원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국내에서 뇌중풍 환자가 더 많이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대사증후군 환자가 뇌중풍에 취약한 이유는 혈액순환과 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복부비만, 고혈압 등 대사증후군의 주요 증상들은 모두 체내 인슐린 분비 기능을 크게 약화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인슐린은 혈액의 포도당 함량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호르몬으로 이 호르몬이 제 역할을 못해서 걸리는 병이 바로 당뇨병이다. 당뇨병에 걸린 환자들은 몸 안에 쌓인 노폐물을 바깥으로 배출하지 못해 혈관에 독성물질이 쌓이는 탓에 염증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혈관이 굳거나 막히는 ‘동맥경화’ 증상은 염증을 우리 몸이 스스로 치료하는 과정에서 혈관벽이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면서 촉진된다.

정 교수는 “우리 몸에 좋은 HDL콜레스테롤 부족 역시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대사증후군 환자들은 뇌중풍과 더불어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게 될 소지도 매우 크다”고 말했다.

○ 저지방·고단백 식단으로 체중 줄여야


대사증후군으로 인한 뇌중풍 발병 가능성을 낮추려면 무엇보다 체중조절이 가장 중요하며 적절한 식이요법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대사증후군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저지방·고단백 식단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특히 동물성 단백질보다는 콩 같은 식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도록 권장한다. 또 설탕 물엿 꿀처럼 단순당질이 들어간 음식보다는 잡곡밥 등 복합당질의 탄수화물이나 채소와 과일류로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체중감량에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알코올 섭취는 혈중 중성지방을 크게 증가시키므로 절대 삼가야 한다.

고려대 안산병원 의료진이 뇌중풍을 겪은 대사증후군 환자의 운동치료를 돕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고려대 안산병원 의료진이 뇌중풍을 겪은 대사증후군 환자의 운동치료를 돕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운동요법 병행도 필요하다. 운동은 대사증후군 치료와 신체 면역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된다. 체중은 1년간 원래 체중의 7∼10% 감소를 목표로 삼는 게 바람직하다. 지나친 운동은 오히려 약해진 뇌혈관, 심장 등에 무리를 주고 갑작스러운 뇌중풍과 심장발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일주일에 3회 이상, 1시간 정도씩 걷기, 조깅,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강도는 최대 맥박수의 50∼80%까지 끌어올리면 좋다”고 말했다.

만약 대사증후군 환자가 뇌중풍으로 신체장애를 입었다면 약물치료와 재활치료가 필요하다. 약물치료에는 혈액이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혈소판제, 항응고제가 처방된다. 뇌중풍으로 인해 상실한 신체, 두뇌 기능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재활치료로는 물리치료, 운동치료, 언어치료 등이 있으며 이 세 가지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한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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