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불세출 기업가 잡스, 불완전한 인간 잡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29일 개봉 ‘잡스’

스티브 잡스(애슈턴 커처)의 혁신은 독선의 산물이기도 하다. 잡스는 회사 동료, 부하 직원들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에게 고독은 필수였을까. 누리픽쳐스 제공
스티브 잡스(애슈턴 커처)의 혁신은 독선의 산물이기도 하다. 잡스는 회사 동료, 부하 직원들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에게 고독은 필수였을까. 누리픽쳐스 제공
2011년 10월 5일. 사람들은 세상의 혁신이 끝난 날로 이때를 기억할지 모른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동시대를 살다 간, 가까이서 목격한 천재로 남아 있는 잡스. 그래서 29일 개봉하는 영화 ‘잡스’에 관심이 간다.

‘잡스’는 말하고자 하는 바에 충실한, 집중도가 높은 영화다. 잡스의 생애를 다룬 영화는 잡스의 대학시절부터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할 때까지를 집중 조명한다. 그의 어린 시절과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해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거두절미했다.

맨발로 교정을 거니는 괴짜 대학생 잡스(애슈턴 커처)는 새로운 것에 목마르다. 불교에 심취해 인도를 다녀오고 여러 여자를 사귀며 히피 문화에 푹 빠져 산다. 학교를 자퇴한 잡스는 전자기기에 능한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조시 개드)과 집 차고에 회사를 차린다.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양산한 애플이었다.

카메라는 집요한 혁신으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경영자로서의 잡스에 초점을 맞춘다. 잡스는 애플의 초창기 투자자에게 150번 전화해 투자를 유도한다. 9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투자자에게는 “당신에게 이 금액이 너무 적다”며 25만 달러를 내놓게 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혁신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가는 그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독선도 비중 있게 그려진다. 직원들은 ‘직관적이고 예지적인, 인간과 하나가 되는 전자기기를 만들라’는 잔소리를 귀에 달고 산다. 제일 유능하다는 프로그래머 직원과의 회의 장면.

“작은 문제는 그냥 넘어가자.”

“나가.”

“나를 지금 자르는 거냐?”

“아니, 이미 잘랐다.”

영화는 인간 잡스의 뒷모습에도 조명을 비춘다. 잡스는 미혼모에게 버려져 양부모 슬하에서 자란 성장배경을 가진 인물. 그는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네가 임신한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라며 쫓아내고, 회사가 성공하자 지분을 창업 공신인 동료들에게조차 나누어주지 않는다. 출생 배경이 주는 좌절감과 고독은 잔인함으로 전이돼 나타난다.

영화는 잡스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스크린 속 잡스는 불세출의 기업가지만 불완전한 인간이다. 전기 영화가 종종 범하는 인물에 대한 무비판적 찬양이 거슬리는, 입체적인 인물 묘사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반길 만한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또렷이 기억하는 인물을 연기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애슈턴 커처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외모와 몸짓의 유사도가 높다. 잡스 하면 떠오르는 검은 터틀넥 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똑같다. 안으로 살짝 구부러진 어깨와 구부정한 허리도 그렇다. 잡스가 큰 키(188cm)로 뭔가를 생각하며 두리번두리번 걷는 발걸음까지 정확하게 흉내 냈다. 커처도 키가 189cm다. 항암치료로 정수리 부근까지 군데군데 빠진 머리로 등장할 때는 잡스의 환생을 보는 듯하다. ‘철의 여인’(2011년)에서 마거릿 대처로 ‘빙의’했던 메릴 스트립이 떠오를 정도다.

전반적으로 유머와 이야기의 반전 등 극적인 부분이 부족해 대중성은 약해 보인다. 잡스가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인류사에 크게 기여한 위인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부족한 인물이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감동보다는 한 인생에 대한 페이소스가 몰려온다. 12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잡스#애플#애슈턴 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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