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2>美 소설가 돈 데릴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3일 03시 00분


‘위기의 현대인’ 차가운 문체로 묘사한 포스트모던 핵심작가

“권력과 자본, 국가는 물론이고 매스미디어와 소비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강제하고 구속하는 모든 체제와 맞서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말하는 소설가 돈 데릴로 씨는 문학성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몇 안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표 작가다. 새물결출판사 제공
“권력과 자본, 국가는 물론이고 매스미디어와 소비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강제하고 구속하는 모든 체제와 맞서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말하는 소설가 돈 데릴로 씨는 문학성과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몇 안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표 작가다. 새물결출판사 제공
《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에는 미국 작가 돈 데릴로 씨(77)도 포함됐다. 장편 ‘화이트 노이즈’(1985년)의 작가로 유명한 소설가 데릴로 씨는 현대 문명의 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내 포스트모던 시대의 핵심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인 장경렬 서울대 교수(영문학)가 그의 작품 세계를 정리했다. 》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193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데릴로의 첫 직업은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였다. 1964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TV 프로 제작자가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그린 첫 장편 ‘아메리카나’(1971년)가 나오기까지 그가 세상에 내놓은 소설은 다섯 편의 단편이 전부였다.

“소설을 쓰려고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라 더이상 일을 하기 싫었을 뿐이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이 전직 카피라이터가 현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작가가 되기 전 조이스, 포크너, 헤밍웨이의 작품을 탐독했고 재즈와 전후 유럽의 영화에 심취했다. 문자·청각·시각 예술의 삼위일체가 뒤늦게 재능을 꽃피운 이 작가에게 창작의 자양분이 된 셈이다.

‘아메리카나’로 문단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데릴로는 1985년 자신의 여덟 번째 장편 ‘화이트 노이즈’ 출간으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다진다. 독일어를 모르면서도 히틀러학(學)의 권위자가 된 대학교수, 남편과 함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그의 부인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소비자본주의를 비롯한 현대 미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이 작품은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며 작가에게 문학적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안겨줬다.

1988년 출간된 소설 ‘리브라’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 리 하비 오즈월드의 생애를 추적하면서 대통령 암살의 동기와 과정을 풀어놓은 작품으로, 뉴욕타임스 ‘올해의 최우수 도서’로 선정됐다.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통일교의 대규모 합동결혼식에 참여한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마오 II’(1991년)도 개인의 상실과 매스미디어의 횡포, 군중의 폭력성을 잘 드러냈다는 찬사를 받으며 ‘펜(PEN)/포크너 상’을 수상했다.

데릴로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나 핵 확산 같은 역사적 사건을 겪으며 살아가는 미국인의 모습을 다룬 ‘지하세계’(1997년)로 다시 한 번 미국 문학계를 강타한다. 등장인물만 100명이 넘는 이 방대한 소설은 ‘화이트 노이즈’ ‘리브라’와 함께 그의 3대 주저로 꼽히며 ‘아메리칸 북 어워드’ 등 다양한 상을 휩쓸었다. 최근 작가는 카뮈의 ‘이방인’처럼 짧지만 문학적 내공을 갖춘 유럽 소설 스타일을 수용해 과거와 달리 규모 면에서 소품에 해당하는 소설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데릴로는 현대 사회의 소비문화, 폭력과 음모가 난무하는 정치·사회적 현실, 그리고 대중매체와 작가의 역할 같은 문제를 특유의 냉정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문체로 탐구하고 있다. 그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핵심 작가로 불리는 이유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현대인은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의식이 대중매체에 지배받고 디지털 혁명과 자본·문화의 세계화가 곳곳을 휩쓸고 있으며 테러리즘과 핵 위험이 상존하는 이 시대와 직면한 인간의 삶을 생생한 필체로 작품화한 데릴로는 박경리문학상의 후보로 손색이 없다.

장경렬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

● 장경렬 심사위원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 영문학 박사. 비평집 ‘응시와 성찰’(2007년) ‘시간성의 시학’(2013년), 문학이론연구서 ‘코울리지’(2006년) ‘매혹과 저항’(2007년)을 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2012년),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2012년)을 번역했다.
#돈 데릴로#박경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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