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4>미국 소설가 메릴린 로빈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6일 03시 00분


기독교적 휴머니즘-도덕적 지혜 ‘시적인 산문’으로 풀어내

‘하우스키핑’ ‘길리아드’ ‘집’, 이 세 편의 소설로 현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메릴린 로빈슨은 탁월한 언어감각과 통찰력으로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도덕적 지혜를 탐색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구글 검색 이미지
‘하우스키핑’ ‘길리아드’ ‘집’, 이 세 편의 소설로 현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메릴린 로빈슨은 탁월한 언어감각과 통찰력으로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도덕적 지혜를 탐색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구글 검색 이미지
《 제3회 박경리문학상 네 번째 후보는 미국 작가 메릴린 로빈슨(70)이다. 현란한 글쓰기가 아님에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으로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미국 문단의 최고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무서운 지성을 가진 천재적 작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로빈슨의 작품세계를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인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가 소개한다. 》

로빈슨은 1943년 미국 중서부 아이다호 샌드포인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재공장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로빈슨은 동부로 나가 브라운대와 펨브로크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1977년 워싱턴대에서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가 됐다.

데뷔작 ‘하우스키핑’(1980년)이 출간됐을 때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작가 겸 평론가 아나톨 브로야드가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이 책은 앞으로 크게 주목을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쓴 게 전부였다. 여주인공 루스가 해체 위기에 처한 가족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브로야드의 예상대로 얼마 안 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로빈슨은 아이오와 주의 길리아드라는 작은 마을의 목사 에임스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길리아드’(2004년)로 이듬해 퓰리처상과 전국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고 그 자매편 격인 ‘집’(2008년)으로 2009년 오렌지상을 수상하며 현대 미국 문단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길리아드’는 일흔 살 에임스 목사가 자신의 일곱 살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인간의 삶과 사랑, 슬픔과 아름다움, 좌절과 희망, 인간에 대한 믿음과 용서를 기독교적 세계관 안에 녹여냈다. ‘집’은 에임스 목사의 친구로 치매에 걸린 보턴 목사의 아들 잭이 알코올중독에 걸린 채 돌아오면서 탕자와 그 구원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했다.

현재 아이오와대 교수로 재직 중인 로빈슨이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자연에 대한 숭엄한 마음으로 기독교적 휴머니즘과 도덕적 지혜를 전통적 문맥 속에서 새롭게 탐색하는 그의 면모 때문이다. 그는 평범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인간의 운명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욕망과 좌절, 그리움과 고독 같은 복합적인 주제를 초연하면서도 미묘하게 그려냈다.

그의 언어는 외국어로 번역이 가능할까 싶을 만큼 우아하고 아름답다. 진주처럼 희미하지만 조용한 빛을 발하는 우아한 언어는 ‘시적인 산문’이라 할 수 있는데 정확할뿐더러 정련돼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의 명성은 소설로만 얻은 것이 아니다. 그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비롯해 양자 이론과 고전 물리학 등에 대한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종교와 과학의 양립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그 결과물인 논픽션 ‘모국’(1989년)은 영국의 핵 재처리 과정에서 비롯된 환경 문제와 이에 얽힌 정치적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로빈슨은 장 칼뱅, 찰스 다윈, 프리드리히 니체 같은 인물을 재평가한 에세이집 ‘아담의 죽음’(1998년)으로 PEN이 주는 에세이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도 ‘자아의 현대적 신화로부터 자기반성의 추방’(2010년) ‘어린 시절에 나는 책을 읽었다’(2012년) 같은 에세이집을 잇달아 펴내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로빈슨은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여전히 발전 도상에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다음에는 그가 또 얼마나 훌륭한 작품을 내놓을지 기대된다.

이태동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

● 이태동 심사위원은…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서울대 영문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초빙연구원, 스탠퍼드대 풀브라이트 시니어펠로를 지냈다. 비평집 ‘나목의 꿈’(2005년)과 ‘한국현대시의 실체’(2008년)가 있고, ‘댈러웨이 부인’(2012년)과 ‘압살롬, 압살롬!’(2012년) 등을 번역했다.
#메릴린 로빈슨#박경리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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