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이나 건전한 놀이를 목적으로 보드게임을 찾는 사용자가 점차 늘고 있다. 또한 '모두의 마블'이 성공함에 따라, IT/게임 업계에서도 교육 서비스나 게임으로 활용하기 좋은 보드게임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에 IT동아는 매주 다양한 보드게임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너 죽고 나 살자’ 마피아 게임의 시작
1986년 러시아의 심리학자 디미트리 다비도프(Dimitry Davidoff)는 인간 심리의 충돌을 그려낸 파티 게임을 고안했는데, 이 게임은 입소문을 타고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이 게임은 국내에서 ‘마피아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며 대학교와 교회의 젊은이들 사이에 퍼졌다. 아직까지도 MT 게임의 대명사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디미트리 다비도프의 게임은 워낙 독특하고 완성도가 높아 수많은 아류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마피아 게임’과 같은 부류의 놀이는, 초반에 탈락한 사람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구경만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게임 경험이 적어서 초반에 탈락한 사람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인원 수가 많으면 게임이 길어지니 기다리는 시간도 더욱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마피아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은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만, 초보자는 즐기기 힘든 게임이라는 한계도 있다.
그렇다면 마피아 게임처럼 심리 대결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게임 시간이 짧고 초보자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은 어디 없을까? 다행히도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바로 ‘삼국지 비밀결사’다.
천하의 운명을 둘러싼 암투, 운명은 내 손에 있다
삼국지 비밀결사는 삼국지 전반부의 절대강자 동탁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게임이다. 왕위를 찬탈하려는 야심가 동탁과 그를 호위하는 친위대(여포, 화웅, 서영 등)가 한 팀을 이룬다. 반대로, 동탁을 암살하려는 비밀결사(조조, 유비, 손견)와 봉기를 준비하는 농민들이 한 팀을 이룬다.
삼국지 원작에는 조조가 동탁을 암살하고자 보검을 선물하는 것으로 위장하고 거사를 도모했다가 실패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활약에 따라 스토리가 달라질 수 있다. 비밀결사의 거사가 성공할 수도 있고, 동탁이 황제가 될 수도 있으며, 예상치 못한 인물의 활약으로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다.
게임에서 각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하나씩 부여 받는다. 누구는 동탁을, 누구는 농민을, 누구는 여포를 받게 될 것이다. 동탁 세력 캐릭터들의 목표는 동탁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고, 반(反)동탁 세력 캐릭터들의 목표는 농민 봉기를 일으키거나 동탁을 암살하는 것이다. 그 외에 중립 캐릭터들도 있다. 중립 캐릭터들은 때에 따라 동탁 세력이 되기도 하고, 반(反)동탁 세력이 되기도 하는 등, 유리한 진영에 붙을 수 있다.
플레이어는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보거나, 다른 사람과 캐릭터를 바꾸거나, 자기 캐릭터를 공개하고 특수 능력을 쓸 수 있다. 특수 능력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중요한 행동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정체를 알기 전에 경솔하게 시도하면, 모두에게 자기 정체를 노출해 역공을 받고 대사를 그르칠 수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정체를 엿보거나 다른 사람과 캐릭터를 바꾸면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의 캐릭터를 보면 내 캐릭터를 노출하지 않고 서서히 정보를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정보를 모이는 속도가 느릴 것이다. 캐릭터를 교환하면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는데, 같은 편이라면 조용히 눈빛 교환을 하며 승리에 빠르게 다가설 수 있다. 물론, 다른 편이라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렇게 탐색전을 벌이며 누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았다면, 서서히 캐릭터 행동을 도모하며 승리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눈치 빠른 사람은 자기 팀이 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상대 팀 캐릭터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캐릭터 교환을 시도할 것이다.
<비밀결사와 친위대>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되면 거사를 벌여 승리하자. 예를 들어 조조, 유비, 손견 등 비밀 결사는 아무 플레이어 한 명을 암살할 수 있으며, 동탁을 암살하면 바로 승리한다. 하지만 암살을 시도하는 사람 옆이나 암살당하는 사람 옆에 여포, 화웅, 서영 등 동탁의 친위대가 있다면 암살은 실패로 끝난다.
<농민>
농민은 자기 차례에 농민 봉기를 선언할 수 있으며, 농민 봉기를 선언하는 사람 옆자리에 앉은 농민은 봉기에 동참할 수 있다. 세 사람의 농민이 연속으로 앉아 봉기를 하면, 농민 봉기 성공으로 승리할 수 있다.
<동탁>
동탁은 게임에서 아무 때나 옥좌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서 모든 플레이어가 한 번씩 차례를 마칠 때까지 반(反)동탁 세력이 승리하지 않는다면, 동탁이 왕위에 올라 동탁 세력이 승리한다. 보통 옆자리에 친위대 캐릭터가 있거나 해서 암살로부터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동탁이 옥좌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중립 캐릭터 4인>
중립 캐릭터는 상황에 따라 이쪽 편도 저쪽 편도 될 수 있으며 게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동탁이 바로 옆자리에 여포가 있는 것을 보고 안심해서 옥좌 차지 선언을 했는데, 여포의 옆자리에 초선(이 게임에서 초선은 양 옆에 있는 친위대 캐릭터의 능력을 빼앗는다)이 있다면 여포는 능력을 잃어 무용지물이 되고, 비밀결사는 동탁의 목숨을 노릴 것이다. 중립 캐릭터는 어느 팀이 승리할지를 예언하는 장각, 원하는 팀에 붙어서 그 팀을 도와줄 수 있는 원소, 동탁 편이 되면 농민들을 색출해 농민 봉기를 원천 봉쇄하는 이유 등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서로의 정체가 어느 정도 파악된 뒤에는, 순식간에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심리 대결이 펼쳐진다. 혹자는 이 클라이막스를 ‘검객 두 사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한 순간’ 같다고도 말한다. 덕분에 조기 탈락으로 게임이 끝날 때까지 지루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마피아 게임과 달리 언변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즉, 삼국지 비밀결사는 단체 심리대결 게임 중에서도 초보자에게 매우 친절한 게임이다.
물론 게임 캐릭터가 다양해, 캐릭터 능력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조금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 한 판에 걸리는 시간이 5~10분 정도로 매우 짧아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본다. 삼국지 원작에 익숙한 플레이어라면 캐릭터 능력이나 상호관계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삼국지 비밀결사는 5~15명까지 즐길 수 있어 캠핑, 수련회, 워크샵 등에서 즐기기 적합하다.
원작을 능가하는 가치와 재미
삼국지 비밀결사는 본래 캐나다의 알렉스 웰던(Alex Weldon)이 만든 ‘술탄 게임’의 테마를 바꾼 작품이다. 원작의 술탄과 경비병이 동탁과 그 부하들로 바뀌었고, 술탄의 대척점에 있는 암살자와 노예는 비밀 결사와 농민으로 바뀌었다. 경비병을 홀리는 밸리 댄서는 초선이 되는 등, 중립 캐릭터들도 변경됐다. 신기한 것은 이러한 테마 변경이 게임 내용과 잘 어울리면서도 국내 유저들에게 좀 더 어필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다시 그려낸 일러스트도 단순한 로컬라이제이션(지역화) 이상의 제품을 완성해 높이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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