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1975∼1980년 ‘최장수 외교수장’ 박동진 前장관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2일 03시 00분


격동의 현대사 한국외교의 산증인

“외교는 조용할수록 좋다”는 지론을 펴온 ‘대한민국 최장수 외교수장’이 11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박동진 전 외무부 장관(사진). 향년 91세.

고인은 대구 출신으로 경북고와 일본 주오대를 졸업했다. 1949년 국무총리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1951년 외무부에 입부했다. 이후 외무부 의전국장, 외무부 차관, 주유엔 대사,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981년과 1985년에는 민정당 전국구 의원에 당선돼 11, 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를 나온 뒤에도 국토통일원 장관, 주미 한국대사, 한국외교협회장을 맡았다.

특히 고인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 외무부 장관에 임명돼 1980년까지 약 5년간 17대 외무부 장관을 지내며 격동의 한국 현대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고인은 1976년 박동선 사건(한국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미 의회 의원들에게 로비했던 사건), 1979년 10·26사태, 12·12쿠데타 등으로 복잡했던 한미관계를 원활하고 조용히 조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신군부에 대한 미국 정부의 항의를 전달하려는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대사를 맞상대한 것도 고인이었다.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와 의회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민감한 시기였다. 당시 고인은 미 행정부가 한반도 정세에 관한 비밀보고서를 상하원 외교위에 각각 제출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신속하게 대처하기도 했다.

1988년 민정당 국회의원이었던 고인은 정부로부터 주미 한국대사로 임명돼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옛 소련 붕괴 등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 3년간 주미대사를 맡아 한미 관계 증진에 힘썼다.

고인은 대표적인 미국 공화당통으로 손꼽힌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2001년)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명한 것에 대해 당시 본보 인터뷰에서 “그런 직설적 표현은 공화당 체질로 볼 때 예상할 수 있는 것인데 우리(한국 정부)가 너무 야단스럽다”며 “외교의 시작은 상대를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족으로는 현민(玄民) 유진오 선생의 딸인 부인 유충숙 여사, 아들 태선 씨, 딸 숙경 혜경 승완 씨, 사위 김등진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4일 오전 8시. 외교부는 고인의 장례를 외교부장(葬)으로 치르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박동진#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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