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같은 물인데,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됩니다. 매사를 바르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정치의 정(政)자에는 ‘바를 정’(正)이 들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바르게 해야 하는 거죠.”
22일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만난 주지 원산 스님(70)은 산중에 있지만 바깥세상 돌아가는 게 답답하다는 듯 때로 목소리를 높였다.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가 봉안돼 있어 불보사찰로 불리는 통도사는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3보 사찰로 꼽힌다. 원산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교육원장을 지냈고, 3년간 문을 걸어 잠근 채 밖에 나서지 않는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하기도 했다.
원산 스님은 8일 통도사 스님 20여 명과 함께 전남 진도를 찾아 위령재를 지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어이없기도 하고 가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며 “위령재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5시간 동안 내내 가슴에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진도 팽목항을 여러 스님과 직접 찾으셨는데….
“요즘 부모들 자식 한둘밖에 없는데 그 천금이 망망한 바다에 희생됐을 때 유가족들의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본인이 그 일렁이는 찬 바다에 빠졌다고 생각해 봐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원인을 따지면 언론에 다 나옵니다. 불교적 세계관으로 보면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것 말고 이면의 것을 봐야죠. 요즘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한데 인명 존중 사상은 오히려 약해졌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존경과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과거에 비해 희미해진 거죠.”
―박근혜 대통령 담화에 대한 시시비비도 있습니다.
“전 이번 사태가 대통령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질만능과 남을 경시하는 사회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정치를 요즘만 한 것도 아니잖아요? 누가 누구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민이 잘하면 대통령도 잘되고, 국민이 못하면 대통령도 못하는 겁니다. 국민과 대통령을 별개로 봐서는 안 됩니다.”
―경제는 옛날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는데….
“먹고사는 것만큼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스승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람을 500명이나 태운 선장이 어떻게 자신만 속옷 바람으로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세월호가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사회 곳곳에 또 다른 세월호들이 많습니다. 최근 법회 때문에 호주에 다녀왔는데 짧은 도로도 몇 년씩 걸려 공사를 한다고 합니다. 화장실 문 하나도 야물게 달아놨습니다. 대한민국은 대충대충, 빨리빨리 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세월호가 있습니까.
“우리 마음이 키운 것이 세월호 참사입니다. 나를 포함한 서로의 마음이 바르지 못해 불신했고, 그래서 생긴 마음의 불씨가 원인을 제공한 참사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훨씬 지났습니다.
“대승적인 입장에서 얘기할 때 큰 고민과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구조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잠수사들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어려운 시기 지도자의 리더십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시대에 맞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어려움을 뚫고 시대를 통합할 큰 지도자가 귀한 시대입니다.”
―박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본인은 잘하려고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겠죠.”
―곧 6·4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정치권은 내가 국민이고, 국민이 나라는 관념 속에 정치해야 합니다. 현재는 여는 여만, 야는 야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내각 사퇴와 대통령 퇴진 주장도 있습니다.
“그건 귀담아들을 가치가 없는 얘기죠. 총사퇴하면 누가 합니까. 그래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인데….”
―국민을 위한 조언을 해 주시면….
“이번에 느끼는 슬픔을 모든 국민이 공유하고, 사회를 바르게 하려는 뜻을 하나로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하나의 꽃송이요, 우주일가(宇宙一家), 우주는 한 집안이죠. 또 너와 나는 불이(不二), 따로가 아닙니다. 한 꽃송이 속에 뿌리, 줄기, 가지, 꽃이 모두 들어 있고, 우주는 한 가정입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 가정의 주인은 가족, 우주의 주인은 모든 생명체인데 모든 것이 내 것인 것처럼 행세해서는 안 됩니다. 천자문 보면, 집 우(宇), 집 주(宙), 이렇게 읽죠. 이렇듯 모두 한집, 한 식구로 보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지도자들을 위한 조언도 부탁합니다.
“작은 그룹이든 큰 조직이든 관계없이 자신이 속해 있는 전체를 위한 위정자가 되어야 합니다. 통도사 주지인 저도 통도사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바칠 각오가 돼 있습니다. 도지사라면 도를 위해,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겁니까.
“우리 얼굴의 이목구비를 뜯어보면 ‘바를 정’자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얼굴에 바를 정자를 찍어 놨으니, 그렇게 살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기에 불행이 생기는 겁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도 위정자뿐 아니라 우리 각자가 지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더 나아져야 합니다. 저는 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다고 봅니다. 물질이 풍요해질수록 인성 교육이 중요한데 아무것도 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성이 제대로 됐을 때 영어, 수학을 가르쳐야 됩니다. 올바른 정신 위에 물질을 놓아야 합니다.”
―복된 인연, 복연(福緣)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합니까.
“비법(非法), 비합리적으로 번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망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식에게 호열자(虎列刺·콜레라) 균을 물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에서 보시(布施·널리 베푸는 것)에 관한 내용을 보면 남에게 인색하지 말고 베풀라 했습니다. 그게 다시 자신을 위한 복덕의 원인입니다. 남을 살리면서 자신도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인색하면 가난해지고, 베풀면 부자가 됩니다. 세상이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보면 맞습니다. 보시행이야말로 환희행(歡喜行)이죠.”
원산 스님은…
△1944년 경남 양산 출생 △1964년 경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9년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81∼93년 직지사 황악학림 졸업, 관응 스님으로부터 전강, 직지사 통도사 승가대 강주(講主) △1994∼97년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교육원장 △1998∼2001년 영축산 백련암 죽림굴에서 3년간 무문관(無門關) 수행 △2011년∼현재 통도사 주지, 사회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 대표, 불교방송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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