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욕설-반말에도 웃는 모습 보여야
“고객이 폭행” 고소했더니 회사 “참아라” 강요… 기본급도 4대보험도 없고, 툭하면 연장근무
《 ‘고객중심’ 경영을 강조하다 보니 “고객이 졸도할 때까지 감동시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임무’를 달성해야 할
감정노동자들은 처절한 심정입니다. ‘내가 왕’이라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 반말, 폭언 앞에서도 직무 매뉴얼에 따라 피에로처럼
웃어야 합니다. 지난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고용인구 1600만 명의 70%(1200만 명)가 서비스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이의 절반인 600만 명이 감정노동자로 추산됩니다. 승무원, 전화상담원, 판매원 등 유통·외식·레저 업종 직원들이 해당됩니다.
지난해 항공기에 탑승한 대기업 임원이 ‘라면이 맛없다’며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으로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이 집중 조명되기도 했습니다.
1년여가 흐른 지금 사정은 좀 나아졌을까요? 》 “제발, 욕 좀 하지 마세요”
―욕은 기본이고, 모멸감 느끼게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 번은 중년 남자가 이미 사용한 3만 원짜리 생활용품을 반품해 달라고 했다. 규정상 안 된다고 했더니 ‘못 배운 ×, 건방지게 나한테 안 된다고 해? 평생 거기 앉아 전화나 받아라’라고 하더라. 상담 창에 뜬 고객 정보를 보니 의사였다.(29·여·인터넷 쇼핑몰 텔레마케터)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대출 받으라’는 전화가 바로 나의 업무다. ‘씨×’은 기본이다. ‘죽여버린다’거나 ‘부모가 너 이러고 사는 거 아냐’는 사람도 있다. 이런 욕을 10분이든 30분이든 다 듣고 있어야 한다. 콜 센터는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없다. 고객보다 먼저 끊으면 친절 점수가 감점된다.(31·여·대출상품 텔레마케터)
―20, 30대 어린 고객들이 상담원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첫 콜에 ‘쌍욕’을 들으면 다시 전화하는 게 두렵다. 흡연이나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콜 센터 직원 대부분이 여자인데, 여자들이 무리지어 회사 앞에서 담배를 피우니 ‘저 회사 이상하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다.(45·여·대출상품 텔레마케터)
―하루 8시간씩 주유소에서 일한다. 주유를 할 때마다 손님에게 ‘주유 중 엔진 정지’를 알리는데 무시하는 손님이 많다. 고급 승용차를 탄 단골 손님에게 “시동을 꺼 달라”고 했는데, 손님이 갑자기 입에 담지도 못할 육두문자를 연발했다.(17·주유소 아르바이트생)
―손님이 잘못할 때도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나. 가령 주소를 잘못 불러줬거나 주문을 잘못한 기록이 있는데도 “난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는 손님이 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손님은 극소수다. 대부분 화부터 내고, 심지어 욕도 한다. 그래도 내가 사과를 해야 한다.(22·패스트푸드 배달원) “성희롱에 진상 고객들, 미칠 지경”
―성인용품 배송을 문의하는 고객이 갑자기 ‘이거 써 봤느냐’고 물었다. 써본 적 없다고 했더니 ‘아가씨 몇 살이냐’며 자꾸 대화를 야한 쪽으로 끌고 가려 했다. 수치스러웠지만 규정상 고객보다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없어 불쾌한 대화를 계속해야 했다. 먹고사는 일만 아니었다면 성희롱으로 몇 십 명은 고소했을 거다.(33·여·인터넷 쇼핑몰 전화상담원)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에서 6년 정도 일했다. 밤에 술에 취한 손님이 식탁에 앉아 나 같은 아르바이트생을 보면서 수군거린다. “저 ××는 과거 행실이 저러니 결국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나 할 수밖에 없는 팔자다”라는 식이다. 간혹 손님들 중에는 성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24·여·패스트푸드점 점원)
―한 고객이 성인용품을 반품하겠다고 했다. 여자 성기 모형을 주문한 남자였는데, 물건을 사용하고는 ‘세척했으니까 반품해 달라’고 떼를 썼다. 애초부터 상담원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한 시간 동안 곤욕을 치렀다. 고객들이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울 때 상담원들은 미칠 것 같다.(30·여·인터넷 쇼핑몰 텔레마케터)
―꼬투리 잡고 득 보려는 ‘블랙 컨슈머’가 많다. 블랙 컨슈머들은 말이 안 먹히면 상담원의 불친절을 이유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정신적 피해가 도대체 어디까지냐. 규정도 없고 결국 고객 마음대로다.(30·여·인터넷 쇼핑몰 고객센터 직원)
―한 달에 다섯 번씩 오는 ‘VIP 진상 손님’이 있다. “항상 하는 일인데, 알아서 잘 해야지?” “메모할 시간에 머리를 써라” 하면서 나를 종 다루듯 하는 태도에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손님은 갑이다. 참을 수밖에 없다.(23·여·호텔 직원)
―손님 중에는 “이거 얼마야?”라며 반말하는 손님이 많다. 모든 물건의 가격을 알 수는 없으니 “한 번 찍어 볼게요”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이것도 모르냐”며 화를 낸다. 어떤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 없으면 “왜 이것도 안 갖다 놨어”라며 화를 낸다.(20·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휴식시간도 없이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아이랑 함께 지낸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간다. 하지만 몸보다 더 힘든 것은 일부 진상 학부모들의 불신이다. 아이 피부가 조금이라도 붉어지면 “네가 때린 것이 아니냐”라며 의심부터 한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26·여·어린이집 교사)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
―콜 센터 회사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다. 유산 위험이 있다는 임산부에게도 휴가를 내주지 않는다. 아프면 그냥 그만두어야 한다. 콜 센터 인력은 값싸고,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다는 이유로 무시하며 부려먹는다.(35·여·홈쇼핑 고객센터 직원)
―교육을 받는 중에 고객에게 폭행을 당하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냥 맞으라고 했다. 맞고 나서 그 다음에 경찰에 신고를 하라 했다. 현장에서 싸우면 회사를 대표한 사람이 고객과 싸운 꼴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직원들의 안전보다 회사 명예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 씁쓸하다.(42·대기업 서비스센터 기사)
―성대 결절이 생긴 후배에게 회사는 한 달 내내 야근을 시켰다. 후배가 “수당도 없이 자꾸 이러면 곤란하다”고 했더니 당장 해고해 버렸다. 우리끼리 회사를 악덕 기업이라고 욕한다.(43·여·대출상품 텔레마케터)
―가장 힘든 것은 계속 웃고만 있어야 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도 일을 하다 보면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웃지 않으면 고객들은 우리가 자신들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하고 불만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웃을 수밖에 없고 언제나 압박감을 느낀다.(43·대기업 서비스센터 기사)
―주 5일, 하루 9시간 동안 전화를 200통에서 250통 정도 받는다. 10년 일했는데 월급이 140만 원을 넘긴 적이 없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 친절도 평가 점수가 잘 안 나오면 10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인센티브가 깎인다.(30·여·인터넷 쇼핑몰 텔레마케터)
―전화를 장시간 받느라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긴 친구가 있었다. 산재로 인정이 안 된 건 물론이고 아파도 쉬질 못했다. 아파서 실려 나가지 않는 한 조퇴는 거의 불가능하다. 연차도 쉽게 쓸 수 없다.(40·여·대출상품 텔레마케터) “권리는 없고 무제한의 책임만 있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냉장고를 고치러 갔다가 고객이 한 번에 못 고친다고 화를 내면서 동료의 정수리 쪽을 가위로 찔렀다. 그런데 지점장과 지사장이란 사람들이 오더니 언론에 나가면 이미지 안 좋아진다고 고소한 걸 취하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로부터는 치료비만 받았다. 보상금은 꿈도 못 꾼다.(36·대기업 서비스센터 기사)
―어떤 회사에서는 상담원에게 기본급조차 안 준다. 어떻게든 상품을 팔아야만 먹고살 수 있게 하는 거다. 4대 보험도 안 된다. 그러면 상담원은 무슨 짓을 해서든 상품을 팔아야 한다.(30·여·보험 텔레마케터)
―고객이 억지를 부리면 상담원이 죄를 뒤집어쓴다. 고객의 부당한 민원 때문에 월급 20만 원이 깎였다. 고객이 “난 신용정보제공동의란에 체크한 적이 없는데 왜 대출 문의전화를 했느냐”며 금융감독원에 회사를 고소하겠다고 했다. 회사는 일이 커지기 전에 고객에게 손해배상을 해줬는데, 내 월급에서 금액을 제했다.(43·여·대출상품 텔레마케터)
―2명의 보육교사가 20명의 네 살 아이들을 맡는다. 밥 잘 먹이고, 배변을 잘하게 하고, 칫솔질을 잘하게 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아 보이겠지만 매일 12시간씩 해 봐라. 전쟁터가 따로 없다. 봉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모든 열정을 다 바치라 한다. 보육교사는 정말 서럽다.(25·보육교사 실습생)
―고객만족도 평가 항목 중에는 모욕적인 것이 많다. 의상이나 외모도 다 들어간다. 그 사람이 이가 누레서 기분이 나쁘다. 옷이 지저분했다. 냄새가 난다. 모든 것이 다 평가 대상이다.(42·대기업 서비스센터 기사)
―콜센터에서는 추가 수당도 없이 연장 근무하는 게 일상이다. 그날 업무 분량을 못 채우면 7시 넘어서까지 근무해야 한다. 목표치보다 더 많은 상품을 팔더라도 보상은 없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 80% 이상이 애기 엄마라서, 이곳 아니면 일할 곳이 없다는 걸 알고는 갈수록 임금도 적게 주고 덜 쉬게 하는 쪽으로 임금체계를 만든다.(45·여·대출상품 텔레마케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