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호 남자가 말하자, 총무실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그중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이곳,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명성 고시텔’에서 3년째 총무일을 맡고 있다. 4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고시텔로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뜨내기 거주자도 많지만, 지금 이곳 총무실에 모인 사람들처럼 6개월, 길게는 2년째 머물고 있는 장기 거주자들도 제법 있다. 그런 사람들이 늘다 보니, 몇 번 술자리도 갖게 되고, 허물없이 비누나 샴푸 등도 나눠 쓰게 되고, 또 지금처럼 반상회 아닌 반상회도 종종 열리게 되었다. 고시텔에 기숙하며 오만 가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내 입장에선 딱히 반갑지도,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회의였다.
오늘의 안건은 일주일 전, 고시텔에 새로 입주한 310호 남자에 대한 문제였다.
“어제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새벽 1시부터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계속 그러고 있더라고요.”
40대 중반 무렵의 키가 작은 310호 남자는, 입주한 다음 날부터 고시텔 공동 식당이 있는 4층에서 무언가 계속 꺼내고 닦고, 또 꺼내고 닦고 하면서 밤을 꼬박 지새우곤 했다. 달그락달그락. 그러자니 공동 식당 바로 옆에 있는 401호, 402호에서 민원이 들어온 건 당연한 일.
“그게 보니까 계속 자기 숟가락 젓가락을 닦고, 싱크대 물기를 닦고, 전기밥솥 전원을 켰다 껐다 하고, 그러다가 식당을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와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러더라고요.”
고시텔 공동 식당엔 전기밥솥이 있고, 그곳엔 내가 매일 떨어지지 않게 밥을 준비해 둔다. 밥은 공짜, 반찬은 각자 준비하는 것. 그것이 우리 고시텔의 시스템이었다.
“거, 우리가 한 번 만나 보는 게 어떨까? 강박증이든 뭐든, 사연을 알아야 도울 수도 있지.”
고시텔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207호 남자가 말을 했다. 회의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변변한 직업도, 가족도 없으면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고시텔 사람들 전부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새벽 두 시 무렵 공동 식당으로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 310호 남자는 계속 숟가락을 닦고, 컵을 닦고, 다시 전기밥솥 코드를 확인하면서 공동 식당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 우리가 좀 도와드릴까요?”
207호 남자가 굵은 목소리로 묻자, 310호 남자는 ‘아, 아니에요. 저, 저 혼자서 하, 할 수 있어요’ 하면서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계속 숟가락에 거품 세정제를 묻히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함께 살게 된 것도 인연인데, 한잔할까요?”
알코올중독 증세가 살짝 있는 203호 남자가 말을 꺼냈다. 고시텔 공동 식당에선 금주가 원칙이었지만, 원칙이란 원래 가진 자들이나, 지킬 것 많은 사람들이나 내세우는 것. 사람들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르르 각자의 방에서 소주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 명확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쭈뼛쭈뼛 사람들 틈에 앉은 310호 남자가 소주를 몇 잔 받아 마시더니(그는 자신의 소주잔을 여러 번 물에 헹구었다),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치킨집…… 화재……… 튀김용 기름…… 운운했던 기억이 아슴푸레 남아 있다. 몇몇 사람들이 ‘저런, 쯧쯧’ 혀 차는 소리를 낸 것도 기억난다. 하지만 그 이후론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 술이 약한 나는 소주 몇 잔에 그대로 ‘정신줄’을 놓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음 날 아침 공동 식당을 치우러 4층에 올라갔을 때, 그때 그곳에서 내가 본 풍경이었다. 전날 술자리 모습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거니, 생각하고 올라갔는데, 이게 웬걸, 공동 식당 식탁과 싱크대는 물기 하나 없이 반질반질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 식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웅얼거리는 310호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기름이 튄 게 아니라 전기합선이라고요. 내가 기름을 어쩐 게 아니라 전기합선이 맞을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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