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회 박경리문학상 네 번째 후보는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68)다. 그는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원제 The Sense of an Ending)에서 성장기 소년과 은퇴 후 노년의 시점을 절묘하게 대조해가면서 인생과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형상화했다. 그의 작품세계를 연세대 불문과 교수인 유석호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소개한다. 》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2011년 부커상 수상작인 ‘예감…’을 본심 심사대상 작품으로 선정했다. 부커상은 영연방 최고의 문학상으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데, 2011년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이 단 31분 만에 만장일치로 반스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반스는 1946년 1월 영국 레스터 출생으로 옥스퍼드대 맥덜린 칼리지에서 현대 언어와 문학을 공부했으며 3년간 옥스퍼드 영어사전 증보판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 그 후 ‘뉴 스테이츠먼’ ‘뉴 리뷰’ 등 문예지 기자로 근무하다 1980년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가 서머싯 몸상을 받으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86년에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프랑스 메디치상을 받았고, 그 후 미국 E M 포스터상, 독일 구텐베르크상,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부르상, 프랑스 페미나상, 오스트리아 국가대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각각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문예훈장(1988년), 오피시에 문예훈장(1995년), 코망되르 문예훈장(2004년)을 받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예감…’은 그의 11번째 소설인데 그의 소설은 대부분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그리고 소설 외에도 2008년 뇌종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팻 캐바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추억을 담은 수상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현재 국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예감…’은 토니 웹스터라는 한 평범한 60대 노인의 회고담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장편소설치고는 길지 않은 편이지만 청춘기와 은퇴 후 노년기의 삶을 대비함으로써 우리 인생의 의미, 과거와 역사에 대한 인식과 판단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1부는 학창 시절의 우정,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로 뛰어난 지적 능력과 인간적 매력으로 친구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에이드리언 핀의 의문의 자살로 끝이 난다. 1부만 보면 이 작품은 별 특징 없는 성장소설 같아 보이지만 그 진가는 1부보다 훨씬 긴 분량의 2부에서 찾을 수 있다. 은퇴 후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그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전혀 다른 모습과 의미로 다가오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인생의 회한을 담은 심경 고백을 담담하게 적어 나간 것이 2부의 주된 내용이다. 특히 결말에 드러나는 놀라운 반전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의 여운이 더욱 생생하게 오래 남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1부 마지막에 역사란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까운 것,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 살아남아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은 소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잘 대변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인생의 의미, 역사에 대한 성숙하고도 지적인 이해와 성찰,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연민의 정, 풍부한 상상력, 관심 분야의 다양함과 박식함 등으로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이고 재기 넘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반스는 박경리문학상 수상 후보자에게 필요한 모든 자격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뛰어난 작가이다.
○ 유석호 심사위원은…
연세대 불문과 교수. 프랑스 리옹2대학 불문학 박사.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 전공으로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팡타그뤼엘 제3서’ ‘팡타그뤼엘 제4서’를 번역했다. 한국불어불문학회장, 연세대 인문학연구원장과 교육대학원장을 지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