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 2일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지원단을 꾸렸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전담하는 조직을 만든 것이었다. 정부가 이렇게 드라이브를 건 후 이 제도는 지난 1년여 동안 ‘새로운 대안형 일자리’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완전히 정착하려면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구직자들이 만족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 증대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하고 있다.
○ “공공부문이 우선 질 좋은 일자리 늘려야”
주부 A 씨(35)는 지난해 한 기업의 시간선택제 직원 채용에 합격했지만 첫 출근을 며칠 앞두고 입사를 포기했다. 결혼 전 다녔던 직장의 처우나 당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현재 모습과 비교할 때 자신의 처지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다.
A 씨는 “아이를 돌볼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좋지만 새 직장이 ‘파트타임’인 게 주위에 알려지는 게 싫었고 회사에서도 아르바이트생 취급을 받을까봐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입사를 망설이는 구직자가 적지 않았다. ‘주로 학력이 낮은 이들이 종사하는 일자리’라는 편견도 입사를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이 3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인 시간선택제 근로자 비중은 17.2%로 전체 임금 근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5.7%)보다 많은 편이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은 꾸준히 개선돼 왔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5월 24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취업하기를 희망한다고 응답한 비율(73.6%)이 지난해 같은 달(63.5%)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앞장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늘림으로써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 등 유럽 선진국도 우선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간선택제를 도입한 뒤 점진적으로 그 수를 늘려왔다.
김동원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유럽에서는 단순한 행정 업무를 하는 자리의 대다수는 시간선택제”라며 “공공기관은 민간기업과 달리 영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일자리를 만들 여력도 있는 만큼 관련 일자리 확산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전일제 직원의 거부감 없게 제도 보완 필요”
정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노력은 기업들의 인식도 많이 바꿔놓았다. 그러나 몇몇 기업은 여전히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특히 시간선택제 근로자의 전일제 전환 허용 여부는 기업으로선 ‘뜨거운 감자’다. 대기업 B사의 인사담당자는 “시간선택제 도입에 맞춰 인사제도를 개편했는데 이들이 갑자기 전일제 전환을 요구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정부가 장려하는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복지, 처우 등의 혜택이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전일제 근로자와 동등하게 보장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일부 기업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가 기존 전일제 근로자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럽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업 장벽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정규직의 로열티가 큰 편이기 때문이다. 기업 역시 수십 년간 정규직 중심의 채용 방식을 유지해왔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우선 전일제 근로자의 시간선택제 전환을 확대해야 한다”며 “전일제 직원들이 ‘내가 바로 시간선택제 확대의 수혜자’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시간선택제에 대한 거부감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전일제 근로자가 육아 등을 이유로 시간선택제로 전환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전일제로 복귀하는 길을 넓히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또 다른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뽑을 여력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 “더디더라도 지속가능한 정책이라는 믿음 줘야”
지난해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산시켜야 하는 이유로 고용률 70% 달성을 강조했다. 저출산 고령화가 노동력 부족을 불러와 한국 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출산, 육아와 퇴직으로 경제활동에서 이탈한 여성과 장년층이 노동시장에 다시 유입되지 않는다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주요 회원국 가운데 고용률이 70%를 넘은 네덜란드 영국 일본 독일 등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비율이 모두 20%를 웃돈다.
하지만 고용률 70% 달성 같은 목표는 경력단절 여성이나 은퇴자 등 일반 국민과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에는 크게 와닿지 않는 슬로건이었다. 박 교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대”라며 “정부는 단기간에 수치를 올리려는 노력보다 조금 더디더라도 구직자와 기업에 지속가능한 정책이라는 믿음을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도 이러한 의견을 취합해 문제점을 보완한 시간선택제 활성화 대책을 내놓는다. 15일 발표할 대책에는 일시적으로 시간선택제로 일하다 전일제로 복귀하는 등 시간선택제 적용 대상의 확대 방안이 담길 예정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년간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의 잠재력이 확인된 만큼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도록 정부가 정책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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