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화두로 잘 알려진 성철 스님(1912∼1993)의 백일법문이 증보판으로 새 옷을 입었습니다. 1992년 첫 출간 때 빠졌던 내용을 보완해 스님의 육성을 충실하게 담았다는 설명입니다.
11일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70)이 참석한 간담회는 책도 책이거니와 책에 얽힌 노장들의 사연이 흥미로웠습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스님은 1972년 출가해 22년간 성철 스님을 시봉했습니다.
알려진 대로 책은 1967년 성철 스님이 해인사 방장에 추대된 뒤 100일간 설법한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하지만 스님의 육성이 책으로 남기까지 사연이 적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녹음하려고 하자 스님은 “쓸데없는 일 한다”며 호통을 쳤다네요. 그래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스승의 눈을 피해 맏상좌 천제 스님 등 몇 사람이 ‘도둑 녹음’을 했고, 이는 결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책으로 남게 됐습니다.
왜 성철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을까요? “깊이를 추구한 ‘본지풍광’ ‘선문정로’가 나올 때는 노장께서 스스로 ‘나 이제, 밥값 했다’고 하셨죠. 하지만 백일법문은 후학들에게 불교의 정수를 쉽게 전달하려고 시작한 ‘방편(수단)’ 법문이어서 초기에 굳이 남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 듯합니다.”(원택 스님)
간담회에서는 법정 스님에 얽힌 일화도 나왔습니다. ‘백일법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실제 녹음테이프에는 법문을 듣던 법정 스님의 질문이 자주 나온다고 하네요.
법정 스님은 ‘본지풍광’ ‘선문정로’ 출판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성철 스님은 책 출간을 앞두고 “문장은 법정 스님이 최고니 원고를 보내 글을 다듬어 달라고 부탁하라”고 했답니다. 이에 법정 스님은 “받침 하나도 그 사람 성격을 보여준다. 더구나 내가 어떻게 큰스님 책을 손대겠느냐”면서도 “그래도 큰스님 부탁이니 보겠다”고 했답니다. 그 작업이 끝난 뒤 법정 스님은 원택 스님에게 “책을 사 주변에 나눠주는 ‘법보시(法布施)’ 하지 말고 꼭 정가를 붙여 서점에 내 놓으라”고 신신당부했답니다.
성철 스님의 반응이 궁금하지요?
“니, 나 보고 책 팔아먹으란 말인가.”(성철 스님)
“법정 스님 말은 그게 아니라 정가를 붙여야 사람들도 책을 귀하게 여기고, 그래야 오래 간다는 말 아닐까요.”(원택 스님)
“오래 간다….”(성철 스님)
내심 불호령을 걱정했던 원택 스님은 처음에 버럭 하다 수그러진 노장의 반응을 승낙으로 여겨 책에 정가를 붙이는 데 성공했답니다.
원택 스님의 시봉 노하우는 이렇습니다. “노장을 대할 때 야구로 치면 홈런을 기대하면 안 돼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하면 홈런은커녕 뺨 맞기 십상이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고, 별 반응 없으면 성공, 안타죠. 하하”.
귀한 책의 또 다른 조건은 보이지 않는 여러 사람의 공덕 아닌가 합니다. “노장 말처럼 저도 나이 칠십에 밥값 했다”는 원택 스님의 말이 귀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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