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大 폭탄, 터뜨려야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국가대혁신 ‘골든타임’ 2부]<7·끝>흔들리는 교육 바로 세우자
(하)수술 급한 대학 시스템

《 지나치게 높은 대학진학률, 학생과 교수 모두 학교를 겉도는 현실, 대학 4년을 마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통 받는 청년들…. 단기간에 양적으로 너무 팽창해버린 국내 대학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대학진학률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학진학률이 30∼50% 정도인 일본, 미국, 유럽 선진국들에서는 최근 이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미래 변화에 대비해 고급 두뇌를 키우고, 국가적인 지식수준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나오는 제안이다. 우리처럼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대학에 가고 보자는 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묻지마식 지원’과 ‘잉여대학’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의 굴레를 키우고 있다. 》

○ 넘쳐나는 대학

고등교육이 보편교육이 돼버릴 정도로 비정상적인 대학 진학 관행은 대졸자 구직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필요한 일자리에 비해 4년제 대졸자가 2배 이상 배출되는 바람에 일자리 미스매치가 악화된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취업 실패의 도피처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까지 늘어날 정도로 악순환의 굴레가 커지고 있다. 서울의 한 여대의 인문대학 교수는 “요즘 석사과정에 들어오는 학생 3명 중 2명은 당장 취업이 안되니 우선 ‘적(籍)’을 두려고 오는 경우”라며 “대학원 수업이 부실해져서 답답하지만 막상 취업이 안 되는 제자들을 보면 안 받아줄 수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식으로 학부 졸업을 유예해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들은 당연히 전공보다 취업 준비에 매달리게 된다. 과도한 대학의 공급이 학력 인플레로 이어지는 꼴이다.

교육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나타난 계기로 대학설립준칙주의를 꼽는다.

문민정부가 1996년 도입한 준칙주의는 기존의 까다로운 허가제 대신 학교법인이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는 대학정원자율화조치와 맞물려 준칙주의 도입 첫해 62건, 이듬해 55건이나 설립 신청이 쏟아질 정도로 대학의 양을 늘렸다. 법인 출연금이나 국가 지원금보다 등록금 의존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사립대로서는 정원을 많이 늘릴수록 이득이었다. 유독 우리나라에 종합대학이 많은 이유다. 후발주자로 진입한 대학 중 상당수는 투자 대비 등록금 수입이 높은 인문대, 사회대 학과를 백화점식으로 늘렸고, 대학원도 운영할 능력이 없으면서 일단 정원을 확보하자는 식으로 덤벼들었다.

○ 진전 없는 구조조정


대학은 계속 늘어난 반면 학령인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정원의 반의반도 채우지 못해 유령 캠퍼스로 전락하는 부실대학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수준이 검증되지 않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해 불법취업의 통로 역할을 하면서 국고를 축내는 대학도 적지 않다. 이런 대학들도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걸러지지 않는 한 국가장학금 지원을 통해 국가에서 받은 돈으로 연명해 나간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절감하고 이명박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학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대학들의 저항과 현행법상 학교법인의 정리가 쉽지 않은 한계 때문에 실제로 퇴출된 대학은 극소수다.

대학 구조개혁을 둘러싼 갑론을박도 구조개혁 진전을 더디게 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자연히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부가 선제적으로 부실 대학을 솎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한동안 대립하면서 정부의 정책 결정도 늦어진 측면이 있다. 그러는 사이 학령인구 감소 속도는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대학 정원은 55만 명 선에 고정된 반면, 고교 졸업자는 2013년 기준 63만 명에서 10년 뒤에는 40만 명까지 급락할 것으로 추산된다. 당장 2018년부터는 고교 졸업자가 대학 정원보다 적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족한 ‘대학구조개혁정책연구팀’에서 활동한 한 교수는 “시장에 맡기면 대학이 알아서 대응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인구 구조가 너무 빨리 바뀌고 있다”면서 “고등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목표와 전략을 제시해서 구조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더 늦기 전에 부실대학을 정리하려면 현실적으로 설립자가 학교법인을 해산하면서 자산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끊이지 않았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여러 차례 사립학교법을 비롯한 관련법의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리 사학들이 학교를 개인 자산 축적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에 해당 법안들이 좀처럼 통과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부실대학 정리를 더욱 미룰 수 없는 시점인 만큼 한시적으로라도 사립대 구조개선 촉진을 위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 박근혜 정부, 대학구조조정 어디로 ▼

서남수표 ‘16만명 감축안’ 기준 모호해 효과 못거둬… 황우여표 개혁안에 촉각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교육부는 지난 정부부터 대학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엄격한 정량지표를 만들어 국립대에 이어 사립대까지 순차적으로 평가해 재정 지원으로 대학을 압박하는 방식을 썼다. 주로 취업률과 충원율 등의 지표를 적용해 부실대학과 재정지원 제한대학을 지정함으로써 자연스레 도태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좀 더 강도 높은 정책을 제시했다. 모든 대학을 5등급(최우수, 우수, 보통, 미흡, 매우 미흡)으로 나눠 9년간 16만 명의 대학 정원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3단계에 걸쳐 △2015∼2017년 4만 명(1주기) △2018∼2020년 5만 명(2주기) △2021∼2023년 7만 명(3주기)을 줄이겠다는 것이 교육부 복안이었다. 교육부가 1월 이 같은 대학구조개혁추진계획을 밝힌 이후 대학가는 1년 내내 구조조정 몸살을 앓았다. 어떤 대학은 정원을 못 채우는 비인기 학과 위주로 통폐합을 추진했고, 어떤 대학은 취업률이 낮은 예체능계 학과를 폐지하는 등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명확한 평가지표를 몰라 깜깜이식 구조조정을 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는 정부가 명확한 구조조정 지표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당초 6월까지 대학구조개혁 및 평가에 관한 법을 만들고, 전문가 400∼500명으로 구성된 대학구조개혁위원회를 만들 예정이었다. 이어 8월까지 평가지표를 확정하고 평가에 착수해 내년 하반기까지 대학별 감축 규모를 확정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예정대로 진행된 것은 하나도 없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 통과가 지연된 탓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각종 재정지원 사업에 정원 감축 계획을 연동하는 바람에 대학들의 불만과 불안감이 쌓이면서 구조개혁에 대한 거부감까지 커졌다.

그러나 ‘16만 명 감축’이라는 강경책을 주도한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이 물러나고 8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구조개혁 방향은 변화의 기류를 보이고 있다. 황 장관은 대학구조개혁을 교육부가 아니라 독립된 평가기구가 주도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황 장관은 또 “무조건 정원을 감축하는 것은 이미 갖춰진 대학의 인프라를 활용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면서 “특성화 분야에 따라 외국 학생을 유치하거나 지역 산업에 맞게 평생교육을 강화하는 식으로 대학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부실 대학#대학 시스템#대학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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