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대기업, 속은 하청직원… 주말없이 일해도 월급은 쥐꼬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미생들 톡톡]
일 시킬땐 “우린 가족” 하더니, 회식은 우리 빼고 정직원끼리만

《 대기업 계약직 신입사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 ‘미생’이 종영됐지만 여전히 많은 직장인은 ‘장그래’를 입에 달고 삽니다. 가히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8월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사상 최초로 600만 명을 넘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까지 더한다면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비정규직은 세대와 직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대기업, 대형마트, 학교, 병원, 공기업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지 오래입니다. 그곳에서 분투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 5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정규직 공고만 바라보고 있는데… 공고는 계약직만 나네요”

대기업에서 인턴을 했어요. 인턴생활을 6주 하고 정규직 지원을 했는데 안 됐어요. 기대가 컸던 만큼 충격 또한 컸죠. 한 달을 허송세월하고 한 대학병원 행정직 계약직 공고가 떴어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8개월 계약직으로 출근하고 있어요. 병원에서는 저를 행정 인턴이라고 불러요. 저 같은 인턴만 30% 정도 되다 보니 인턴이 없으면 병원이 안 돌아간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예요. 오전 8시 반에 출근해서 오후 5시 반 퇴근할 때까지 커피 심부름은 기본이고 우편, 복사, 팩스, 스캔 등 자잘한 일들을 주로 하죠. 업무라고 할 것도 없고 성취감 같은 건 찾을 수 없지만 유일하게 좋은 건 ‘칼퇴근’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한번은, 시키는 일을 다 하고 할 게 없어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지나가던 분이 “너는 비싼 돈 받고 공부하러 왔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듣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서 펑펑 울었어요.

저도 나름대로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으니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계약직은 생각도 안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계약직 파견직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어요. 취직하기가 워낙 어려우니 자리를 고를 처지가 아니죠. 요즘은 그나마 그런 자리도 없어요. 좀 이름 있는 직장이라면 더하죠. 또 8개월 계약기간이 끝나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정규직 공고만 봤는데 이제는 계약직 파견직 가릴 것 없이 다 찾아봐요. 나이는 들어가는데 놀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계약직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2년 뒤가 또 걱정이에요. 어떡해야 하죠?(26·여·대학병원 행정직·7개월 차)

○ “나이 많은 계약직… 열 살 어린 과장님이 대하기 어렵대요”

27세에 용역사원으로 이 회사에 들어왔어요. 31세가 되던 2007년 여름부터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됐고, 정부가 공기업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공기업 계약직 사원들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하라고 하니까 회사는 6년 차 계약직 사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바꿔줬어요. 8명 중 스스로 포기한 2명을 빼고 모두 전환됐어요. 이 과정에서 5년 차 직원들의 상심이 컸어요. 1년만 버티면 될 거라며 서로를 위로했는데 불행히도 이후로는 전환해주는 경우가 없어졌어요. 무슨 기준이었는지 몰라도 6년이라는 기간은 회사에서 임의로 정했던 거였어요. 저요? 저는 다행히 운이 좋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어요.

처지가 바뀌고 나서 달라진 거요? 명절 선물 정도? 정규직과 똑같은 선물을 받으니까요. 그런데 기분이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바로 옆자리 계약직 사원들은 못 받으니까요. 바로 얼마 전까지 내가 저 사람들 처지였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안도도 되지만 옆 동료들이 안됐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해져요.

무기계약직이 되어 고용은 안정됐지만 불편한 게 하나둘 생기더라고요. 정규직원들 중에는 열 살 어린 과장님도 계시는데 저를 어려워하세요, ‘누구 씨’ 하며 이름을 부르기 좀 그러니까 저한테 ‘선배님’ 하시는 거예요. 제가 이 조직에 누를 끼치는 존재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맡고 있는 일이 꽤 전문적인 분야인데도 불구하고 비전이 안 보이는 것도 괴로워요. 제 나이가 쉰, 예순이거나 딸린 자식이 줄줄이 있다면 군말 없이 맡은 일만 하겠지만 전 아직 젊으니까 또래들과 자꾸 비교를 하게 돼요. 그분들은 계단을 밟으면서 올라가지만 전 늘 제자리걸음이 될 테니까요.(39세·여·공기업 근무·12년 차)

○ “회사에 치이고 파견업체에 치이고”

매장 직원들이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은 구분하기 힘들겠지만 매장엔 저 같은 협력사원, 센터 정직원, 그리고 각 업체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 등 세 부류가 있어요. 서로 허물없이 지내긴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죠.

협력사원들은 회사가 두 개인 거나 다름없어요. 제가 월급을 받는 회사와 제가 매일 출근하는 회사요. 두 회사 밑에서 눈치 보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어버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는 더해요. 제가 소속된 회사 사장님은 저희들을 통해 매장에 행사 매대 하나라도 더 놔달라고 조르라 하시는데 매장을 운영하는 매니저님은 특정 업체에만 특혜를 줄 수 없다고 하시고. 이 말을 사장님께 전하면 저희들의 무능한 탓이라고 난리를 피우죠. 한마디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거예요.

매장에 힘든 일이라도 생기면 정직원, 협력사원 할 것 없이 다 모아두고 우리 일이니까 다같이 하자고 말하지만 하루 일을 힘들게 끝내고 회식을 하러 갈 때는 정직원들끼리만 가요. 자기 식구 챙기는 거야 이해하지만 그럴 거면 ‘우리’라는 말은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회사에 치이고 손님들한테 치여 가면서 7년을 열심히 일해도 월급은 100만 원이 안 돼요. 이러다 언제 돈 모아서 시집가고 애 낳고 살 수 있을까요.(35·여·대형문구센터 협력사원·7년 차)

○ “20년 일하고 나간 계약직 사원… 수고했다 말 한마디 없어요”

우리 학교에는 비정규직이 굉장히 많아요. 돌봄 선생님, 행정실 사무보조, 기간제 선생님 그리고 저희처럼 급식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조리장 1명, 조리사 8명)이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처음에 들어오면 2년짜리 계약서를 써요. 그리고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이 되죠. 정규직은 아니에요. 계약서만 안 쓸 뿐 대우가 크게 달라지진 않아요.

저희는 1530인분의 점심을 2시간 30분 안에 준비합니다. 내가 밥을 하는데 그 밥을 못 먹어요. 우리가 공짜로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교직원들처럼 급식비를 내고 먹겠다고 해도 안 된대요. 얼마나 치사한지 몰라요.

20년을 일하고 퇴직한 분이 계셨는데 교무실에서 아무도 안 나오시더래요. 평생을 열심히 일한 곳에서 버림받은 것 같더래요. 집에 가서 많이 우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학교에서 일한다는 보람이 있어요. 아이들이 “잘 먹겠습니다”라고 하면 어떨 땐 눈물이 찔끔 나요. 주책이죠.(50·여·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사·8년 차)

○ “나가라 할까봐 다쳐도 산재 말도 못꺼내”

지역 케이블방송에서 정직원 기사로 일했는데 회사가 갑자기 저희 일을 다른 회사에 외주로 돌려버리면서 거의 해고된 셈이 됐죠. 인터넷 수리기사 일을 시작했는데 저희에게 하청을 준 원청업체가 따로 있죠. 월급이 기본급에 건당 수수료가 붙는 형식이라 많이 뛰면 뛸수록 많이 버는 구조예요. 그런데 자재비 통신비 차량유지비 등 업무에 드는 비용이 모조리 기사 몫이니까 실제로 손에 쥐는 건 월 140만 원이 전부예요.

요즘은 영업까지 뛰어야 해요. 예를 들어 인터넷 수리 건으로 방문해서 인터넷TV(IPTV)에 가입하게 하는 거죠. 할당량도 정해져 있는데 못 채우면 월급에서 깎아요. 그나마 다행인 건 기본급이 있다는 건데 그마저 없다는 기사들도 있더라고요.

오전 8시에 센터에 출근해서 전달사항 듣고 바로 수리를 청한 고객 집으로 달려가요. 퇴근시간은 따로 없어요. 일 자체가 꾸준하게 있으면 정시 퇴근도 가능할 테지만 하루에 달랑 3건 있을 때가 허다하거든요. 그럼 밤늦게까지 기다리다가 고객이 부르면 달려가는 식이에요.

주말도 없이 일하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는 건 꿈도 못 꿔요. 둘째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신경을 많이 못 써줬어요. 아내가 그러는데 둘째가 우울증이라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엄마 아빠가 먹고산다고 바깥에서 뛰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어린것이 얼마나 외로웠으면 병까지 왔을까 싶어 가슴이 찢어집니다.

우리 기사들은 설치를 하든 수리를 하든 전봇대에 올라가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몸이 성한 데가 없어요. 다들 한 번씩은 전봇대에서 추락한 경험이 있죠. 산재 처리는 꿈도 못 꿔요. 괜히 이야기 꺼냈다가 당장 나가라는 소리만 들을 게 뻔해요. 그래도 명색이 대기업 이름 달고 뛰는 일이라 기업 이름에 먹칠하지 않기 위해 고객들을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데 회사는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하는 것 같아요.

하루 쉬면 그만큼 월급이 줄어드니 아파도 쉴 수가 없어요. 저도 이가 3개나 빠졌어요. 아파도 병원 갈 시간이 없어 방치했더니 그만….(43·인터넷 수리기사·8년 차)

오피니언팀 종합·도혜민 인턴기자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계약직#하청#미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