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에서 패배감에 젖은 학생들만큼이나 문제가 되는 것은 무기력한 선생님들이다. 일반고 교사라고 처음부터 학생에 대한 애정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반고가 온전히 학생에게 열정을 쏟기 힘든 구조라는 것. 학업 의욕이 없는 학생부터 우수한 학생까지 편차가 커서 수업의 초점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남자 고교에서 영어를 담당하는 A 교사는 지난해 수업 중에 자는 학생을 깨웠더니 “마음속으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다”고 대들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는 “학습 의욕이 없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수업 의욕도 덩달아 꺾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반고는 상담 업무 부담도 다른 유형의 고교들에 비해 더 크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 진로에 무심한 학생, 특성화고에 가지 못해 온 학생, 직업반을 원하는 학생 등 수요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관심사가 다양한 학생들에게 맞춤형 상담을 해 주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일반고는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은 편.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학급당 학생 수가 40명이 넘는 일반고 학급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2190개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고 교사들은 담임을 기피하는 경향도 보인다.
교사들의 무기력증은 4, 5년마다 전근을 가는 공립고가 더 심하다.
의욕적으로 변화를 이끌던 교사들이 전근을 가면 학교 분위기가 도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서울 구일고 김철중 교사는 “담임 업무와 생활지도, 상담에 적극적인 교사가 수당을 더 받고 승진에 유리하도록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고 우수 교사가 공립고에 정착할 수 있도록 시도 교육청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정을 잃지 않도록 교사들끼리 서로 격려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결국 일반고의 문제는 학교와 교사가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학교를 든든히 버텨 내는 기둥 역할을 하는 선생님들의 열의마저 없다면 일반고는 더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문화를 만들어 가는 학교로 서울 창동고가 꼽힌다. 공립 일반고라는 한계를 딛고 최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생활지도 우수학교로 선정된 창동고는 교사 연구 동호회 ‘웃떠만’을 통해 교사들이 노하우를 공유하고 서로 격려하는 문화가 있다. ‘웃고 떠들며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가는 교사 모임’이라는 뜻의 웃떠만은 30, 40대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구성한 동호회. 학기마다 두 번씩 모임을 열어 학교 현안에 대해서 토론하고, 학교를 바꾸기 위한 아이디어를 나눈다. ‘학생에게 일대일로 질문할 때에는 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는 부분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와 같은 수업 노하우, ‘단체 얼차려는 모두를 적으로 만듭니다’와 같은 수업 실패 사례를 나누면서 학생 지도 열의를 다진다. 이 학교 박경수 교감은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실천까지 함께 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야 교사도 열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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