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에서 양궁선수로 태극마크를 달려면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대한양궁협회는 매년 국제대회를 앞두고 색다른 방식으로 대표선발전을 연다. 1차 선발전을 맑은 날 치렀다면 2차 선발전은 바람이 심한 날, 3차 선발전은 추운 날씨에 치르는 식이다. 대표선수들의 훈련도 비슷하다. 비, 바람, 더위, 추위 등 다양한 날씨에서 훈련한다. 또 관중이 많은 프로야구장을 찾아 활을 쏘기도 한다.
#2. 쇼트트랙 대표팀의 훈련도 양궁과 비슷하다. 종목의 특성상 언제나 넘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훈련한다. 제일 앞 선수가 넘어졌을 경우, 선수가 옆으로 치고 들어올 경우, 두 바퀴가 남았을 때, 한 바퀴가 남았을 때 등 다양한 상황을 가정한 뒤 그에 맞춰 훈련한다.
○ 스포츠와 플랜B
한국의 양궁과 쇼트트랙이 세계 최강인 이유는 ‘플랜B’가 잘돼 있기 때문이다. 플랜B는 원래 계획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해 준비해 둔 예비계획을 말한다. ‘각본 없는 드라마’ 스포츠는 예상하기 힘든 변수로 가득 차 있다. 분석하지 않은 상대를 갑자기 만날 수도 있고, 분석해 둔 상대라도 다른 전술을 들고 나와 분석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날씨 등의 상황 변수도 있다. 세계적인 선수는 다양한 플랜B를 만들어 훈련 때 반복 숙달한다.
스포츠의 플랜B 훈련에는 ‘재집중 계획(refocusing plan)’과 ‘시뮬레이션(simulation) 트레이닝’이 있다. 재집중 계획은 원래 계획한 기술이나 작전이 상대의 변칙플레이 등 방해 요인으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때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농구경기에서 뒤지고 있는 상대 팀이 작전타임으로 경기의 흐름을 끊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 두는 식이다. 시뮬레이션은 연습경기 등 경기 상황과 똑같은 조건에서 훈련하는 것이다.
최상급 선수는 초보 선수에 비해 플랜B가 많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더 많이 가정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세운다. 바둑의 고수가 17수에서 50수 앞을 내다볼 수 있듯 세계적인 선수는 수가 많다.
○ 사회와 플랜B
일상생활에서도 플랜B가 필요하다. 모든 일이 항상 예상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을 때 대출받아 집을 산 사람은 경제 상황의 변동으로 금리가 갑자기 오르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플랜B를 준비해 놓았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플랜B는 사고도 막을 수 있다. 외딴곳의 수련시설에서 진행되는 신입생 환영회에 참가한 대학생, 수학여행 길에 오른 중고교생, 억새를 지붕으로 만든 야외 바비큐 시설을 이용하는 여행객, 덮개를 씌우지 않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화물차 운전자, 녹색 보행신호등만 믿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 모두 위험 상황에 대처할 플랜B가 필요하다.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고 방심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플랜B 세우기는 멘털 기술의 하나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훌륭한 스포츠 지도자는 항상 플랜B로 선수를 무장시킨다. 당장 눈앞에 효과가 나지 않더라도 발생 가능한 상황을 예상해 훈련시킨다. 사회지도자도 플랜B를 생활화해야 한다.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위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지를 시뮬레이션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근력-순발력 키우면 부상 위험도 줄어▼
김재훈 한서대 객원교수는 2000년 ‘노인의 신체적 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건강증진프로그램 주요 요인’이란 박사학위 논문에서
“체력이 좋으면 일상생활에서 안전사고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운동그룹과 비운동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실시한 그는 “노인들은
유연성이 높아지면 전반적인 삶의 질도 좋아졌다. 근력과 평형감각이 좋은 노인들은 낙상 등 사고를 잘 당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운동능력은 각종 안전사고를 줄여준다. 스포츠를 통해 순발력과 민첩성을 키우고 근력과 평형감각을
키우면 보행 중 교통사고 등 돌발 상황을 모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용운 경남대 교수(운동역학)는 “근력이 좋고 순발력이
있으면 위험 상황에서 좀 더 빨리 대처할 수 있다. 넘어질 상황에서도 발을 한발 먼저 내디뎌 중심을 잡을 수 있다. 넘어지더라도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일본은 초등생들에게 수영을 필수적으로 가르친다. 섬나라인 일본에서 수영 배우기는 미래에 닥칠 위험에 대비한 일종의 플랜B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신체활동과 건강’이란 보고서에서 “규칙적인 운동은 관상동맥질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CDC에 따르면 운동효과는 크게 10가지다. 사망률을
낮추고, 심폐질환, 암, 당뇨병, 골관절염, 골다공증, 낙상, 비만도 등을 예방하거나 낮춰준다. 정신건강에도 좋다.
전문가들은 특히 최근 우울증에 의한 자살과 관련해 스포츠의 효용성을 강조한다. 운동을 하면 감정과 정서, 기분 조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일종의 항우울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과 노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이 분비된다는 실험
결과들이 근거다. 최근엔 신경정신과에서도 우울증 처방으로 스포츠활동을 권하고 있다. 학업 부진이나 미취업 등으로 비관하는
청소년들에게 스포츠를 생활화시켜야 하는 이유다.
체력이 강하면 스트레스를 이기는 능력도 좋아지며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 신체가 건강하면 자신감이 넘쳐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적극 돕게 된다. 전 국민의 스포츠 생활화가 안전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첩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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