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본 역사교과서 2권을 갖고 있다. 1997년 짓쿄(實敎) 출판사의 고등학교용 교과서와 2001년 후쇼샤(扶桑社)의 중학교용 교과서다. 앞의 것은 역사교과서 논란이 일기 이전의 책이고 뒤의 것은 역사교과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로 그 책이다. 그러나 두 책 모두 독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딴판이다. 일본의 모든 역사교과서에 ‘독도는 1905년 일본 시마네 현에 편입됐다’ 같은 기술이 들어갔거나 들어간다. 일본인들은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변곡점(變曲點)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 명기 작업은 그전부터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없었어도 그 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됐을 것이다. 전략에 말려든 대통령 방문
사실을 말하자면 일본이 2005년부터 ‘독도의 날’을 정하면서 도발 수위를 꾸준히 높여왔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참지 못하고 독도를 방문했다. 문제는 일본 쪽에서 볼 때 그의 독도 방문이 자신들의 도발로 한국이 반응하리라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잘못은 독도에 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일본의 시나리오에 딱 들어맞는 행동을 해줬다는 것이다.
독도는 위안부와 달리 ‘조용한 외교’로 계속 갔어야 했다. ‘조용한 외교’를 했더라도 독도 도발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기 나라 교과서에 자기가 넣겠다는데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러나 독도는 일본의 모든 교과서가 ‘일본 땅’이라고 해도 일본 땅이 되지 않는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한국에 속했고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독도에서 우리는 더 얻을 게 없고 일본은 더 잃은 게 없다는 게 ‘조용한 외교’의 근거다. 우리가 일관된 노선을 지키지 못하는 사이 일본은 일로매진(一路邁進)해 일단 자국 내에서 분쟁지역화에 성공했다.
조용한 외교는 가만있는 외교가 아니다.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설명하면 될 것을 요란하게 맞대응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독도는 사정을 알면 알수록 한국 땅이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일본근대사상비판’을 쓴 사상가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는 “일본에서 다케시마 연표는 러일전쟁의 역사를 구성하는 일 없이 1905년만을 떼어낸 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말로 일본 쪽 주장의 약점을 집어냈다. 러일전쟁의 틀에서 일본의 독도 편입을 본다면 제국주의적 침탈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조용한 외교’ 확고히 지켜야
우리가 다시 2012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이 모든 교과서에 독도를 명기하기로 했으니 우리도 입도지원시설을 짓자는 식의 대응은 하지 말자. 그냥 무시해 버리자. 그리고 우리가 꼭 필요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 땅에서 하자. 대통령까지 독도를 다녀왔는데 못할 게 뭐가 있는가. 좋게 보면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우리 마음속의 한계 같은 것을 깨버린 측면도 없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조바심으로 망치고 있는 독도의 경관이다. 일본이 도발할 때마다 독도에 덕지덕지 시설을 지어 난민촌처럼 만들지 말자. 독도를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독도의 주인답게 독도를 스마트하게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진짜 독도전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주인다운 위엄을 가지고 독도를 다루는 것이 진짜 독도전에서 독도를 제대로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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