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소설]<32>5월 8일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하나밖에 없는 우리 형은 애꿎게도 1981년 5월 8일 태어났는데, 거 참, 태어날 날을 스스로 정할 수도 없고, 개명하듯 생년월일을 바꿀 수도 없는 탓에, 해마다 생일에 자기 돈 내고 카네이션 사는 일을 근 삼십 년 가까이 해와야만 했다. 형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진 생일과 어린이날을 ‘퉁치는’ 부모님의 만행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했고, 그래도 항상 카네이션은 사야만 했고, 자기 생일 케이크를 눈앞에 두고도 늘 먼저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하는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 집 5월 8일의 풍경은(그러니까 형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될 때까지) 갈수록 온 우주가 다 어색해지고, 집 안 화초들마저도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리는 멋쩍은 분위기가 연출되곤 했다.

“어머니, 아버지.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올해도 건강하시고요.” “그래, 뭐, 너도 생일 축하한다.” “뭐 한다고 힘들게 미역국을 끓이셨어요?” “어버이날이 뭐 별 거라고…. 할 건 해야지.”

그러곤 침묵. 서로 묵묵히 밥을 먹고 각자 회사로, 학교로 나가는 일상이 이어진 것이다.

형은, 안타깝게도 친구들에게도 제대로 된 생일 축하 한번 받아보지 못했는데, 청소년 때는 친구들이 카네이션 사는 데 용돈을 전부 쓰느라 선물을 챙겨주지 못했고,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야, 그래도 어떻게 어버이날 술을 마시고 들어가냐? 다음에 하자, 다음에” 하는 응답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 나는 뭐… 형이 그냥 ‘어버이’가 된 기분이었다. 두 살 터울 형제끼리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어색하고, 생일 축하 노래를 혼자 불러주기도 민망해, 그냥 속으로만, 경건한 마음으로, 형 생일을 축하해주었다(몇 년 전인가, 술을 마신 늦은 밤, 다음 날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사다가 형 몫으로 하나 더 샀는데… 나에게서 카네이션을 받은 형은… 아무 말도 없이 길게 한숨만 푹 내쉬었다).

그러던 형이 폭발한 것은, 며칠 전 어버이날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사정이 먼저 있었다. 우리 나이로 올해 서른다섯이 된 형은 벌써 오 년째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과는 올해도 낙방. 하필 시험 결과 발표가 사월 말에 나는 바람에 집안 공기는 더 냉랭하고 스산하게 변해 버렸다. 아버지도 현직에서 퇴직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처지였고, 나? 나 또한 거듭된 취업 실패에 지쳐 막 대학원에 진학한 처지였으니…. 그야말로 삼부자가 백수나 진배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맞는 어버이날이었으니… 어머니 입에서 혼잣말처럼 이런 대사가 튀어나온 것도 하등 이상할 일 없는 노릇이었다.

“남들은 어버이날이라고 자식들이 여행을 보내준다, 용돈을 준다, 하는데… 뭔 놈의 팔자가 평생 어버이날 미역국이나 끓여대고 있으니, 원….”

평상시 형 같았으면, 국으로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으련만,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누가 미역국 끓여달라고 했어요? 나는 뭐 이러고 싶어서 이런 줄 아세요? 나도요, 매번 생일 때마다 죄지은 기분이라고요!”

아버지와 나는, 평소와 다른 어머니와 형 사이에서 가만히 눈치를 보다가 말없이 미역국을 떠먹기 시작했다. 아이 씨, 나가서 케이크라도 사와야 하나? 나는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죄지은 거 같으면 아무 데나 취직해서 빨리 장가라도 가! 그러면 네 생일은 네 부인이 챙겨줄 거 아니야! 그러면 되겠네!”

어머니의 말에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식탁 한쪽을 내려다보다가 성큼성큼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그래도 형 생일인데, 시험도 떨어졌는데, 어머니가 너무 하네, 하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조용조용 형 방으로 걸어갔다.

형은 책상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형, 내가 아는 누나 중에 공무원이 한 명 있거든. 내가 형 생일 맞아서, 어떻게 소개팅 자리라도 한번 만들어볼까? 내가 미리 얘기는 해놨는데….”

“일없다.”

형은 계속 눈을 감은 채, 무표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형, 엄마 말처럼 장가라도 가면….”

그러자 형이 조금 물기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너, 그거 아냐? 난 장가를 가면 어버이가 두 분 더 생긴다. 생일날 챙겨야 할 어버이가 두 분 더 늘어난다고….”

형은 5월 8일생이었다. 사위가 되든 자식이 되든, 변함없는. 나는 예전보다 형이 한 뼘은 더 안쓰러워졌다.

이기호 소설가
#5월 8일#카네이션#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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