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소설]<34>비행기 안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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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기호 소설가
이기호 소설가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안개처럼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기침 입자, 몸을 뒤척일 때마다 수시로 그의 팔꿈치에 와 닿는 손등…. 그는 담요를 이마 바로 아래까지 덮고 있다가 좌석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 비행기, 그는 스튜어디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니까 그건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들렀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어쩔 수 없이 두바이 공항에 잠시 머물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직항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동이라, 중동이라 말이지…. 그는 두바이 공항 환승 구역으로 들어서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띄엄띄엄 터번을 쓴 사람들과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노트북 가방 안쪽 지퍼를 열고 비닐 팩에 보관해 두었던 마스크를 꺼냈다.

더블린에 있을 때도 그는 수시로 인터넷에 접속해 한국 상황을 체크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거쳐 간 병원과 동선, 감염 경로에 대해선 따로 수첩에 메모를 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출장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한국의 상황은 아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좀 더 아일랜드에 머물렀으면 좋으련만, 그가 일하고 있는 어학원 원장은 직원들의 복지나 개별 사정 따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장이 정해준 일정 그대로 움직여야 했고, 원장이 끊어준 항공권에 따라 이동해야만 했다. 그가 일하고 있는 어학원은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발생한 병원과 버스로 십 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는 두바이 공항에 머무는 세 시간 동안 모두 네 번의 손을 씻었고, 두 번의 양치질을 했으며, 105번 게이트 앞 대기좌석을 물 티슈로 꼼꼼하게 네 번 닦아냈다. 그러고도 쉬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비행기 탑승 삼십 분 전부터는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청소 도구함 옆 빈 공간에 등을 돌리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사실, 그는 그렇게 깔끔한 사람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서 손을 씻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었고, 구강 청결제나 손 세정제를 따로 쓰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운이 나쁘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된다, 타인은 그저 믿을 수 없는 바이러스일 뿐이다…. 그것이 그가 믿는 전부가 되었다.

문제는 두바이에서 떠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자마자 벌어졌다. 그의 좌석은 통로 측 13D였다. 그의 바로 옆 좌석엔 칠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명과 오십대 중반의 아주머니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그 둘은 일행처럼 보였는데, 할머니가 가운데, 오십 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창가 쪽 좌석이었다. 비행기 좌석은 좁았고, 그래서 그의 팔꿈치에 할머니의 몸이 자주 닿았다. 할머니는 자주 끙끙, 소리를 내며 상체를 비틀었다.

그가 아연실색,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된 것은 기내식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할머니가 몇 번 잔기침을 한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으나, 창가 쪽 아주머니와 나누는 대화를 얼핏 엿들은 뒤부터는 후들후들, 다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

“중동에선 얼마나 사신 거예요?”

“몰라, 한 삼십 년 되나? 중동이라면 이제 아주 지긋지긋해.”

“그럼 이번에 아예 서울로 이사 가는 거예요?”

“영감도 없는 마당에… 나 혼자 중동에 있으면 뭐해….”

중동과 기침… 중동에서 삼십 년… 그리고 잔기침…. 그는 담요를 이마까지 덮고 있었지만, 그걸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좌석을 바꿔야 한다, 좌석을 바꿔야 한다….

스튜어디스는 그의 사정을 듣고 승객 좌석표를 확인하더니, 잠깐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그와 함께 할머니 좌석 쪽으로 다가갔다. 스튜어디스 손에는 체온기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 몸이 좀 안 좋으세요?”

스튜어디스의 말에 할머니는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창가 쪽 아주머니도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냥 잔기침이지 뭐…. 늙으면 다 이래.”

“할머니 지금 스위스 다녀오시는 길 맞죠? 두바이에서 비행기 갈아타시고.”

“응, 우리 아들이 효도 관광 보내줘서. 근데 왜?”

“아니…. 이 분이 할머니 중동에서 오래 지내셨다고…. 그래서 좀 걱정이 된다고 해서….”

“이 할머니 중동에서 오래 산 거 맞아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대?”

창가 쪽 아주머니가 말을 보탰다. 스튜어디스가 다시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아니, 지금 스위스 다녀오신다면서요?”

“누가 뭐래? 스위스 갔다 오는 거야. 집은 중동이고. 부천시 중동. 나, 거기서 삼십 년 살았는데.”

그와 스튜어디스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어쩐지 목울대가 간질간질, 잔기침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얼른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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