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김구와 이승만을 보는 비대칭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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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
드라마 ‘징비록’을 비분강개하며 열심히 보고 있던 6월 초. 한 신문의 청소년 페이지에 ‘징비록’ 이야기가 나왔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재상이었던 류성룡이 7년간의 왜란을 겪은 후 이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기록한 책으로, 수군통제사 이순신의 활약이나 명나라와의 갈등 같은 당대의 역사가 소상히 객관적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침략의 낌새도 채지 못한 채 허망하게 당한 조선시대 지도층의 무능한 역사를 돌아보게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관을 고취하려는 글인가, 라며 짐짓 흐뭇해한 순간, 웬걸? 끝부분에 가서 이야기는 뜬금없이 백범 김구로 넘어간다. “서로 하는 말은 달랐지만 류성룡과 김구의 나라 사랑은 모두 애틋했어요. ‘백범일지’에 담긴 김구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류성룡 이야기가 왜 마지막에 김구로 끝나는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로부터 2주 후, 같은 신문 같은 면에 또 김구가 등장한다. 김구가 암살당한 6월 26일을 기념하여 서울 효창동에 있는 백범 김구기념관에 가 본다는 콘셉트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인가요? 여기 평생 ‘대한 독립’을 소원하던 사람이 있어요.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죠. (…) 이곳은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사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그로부터 3주 후인 8월 12일, 역시 똑같은 신문 똑같은 면, 다시 한번 김구 특집, 이번에는 광복절을 기념해서이다. “광복절이 돌아올 때마다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기쁨을 함께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이러한 시기에 다시 꺼내 읽어야 할 책이 바로 ‘백범일지’예요. 이 책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집필한 책이지요.”

불과 한 달 사이에 똑같은 신문, 똑같은 시리즈에 존경심이 행간에 가득 담긴 어조의 백범 글이 무려 세 번 등장하는 동안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청소년 페이지 그 어디에서고 단 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다. 대표적인 보수 신문이 보수 독자들의 구독료와 광고비를 가지고 청소년들의 사고를 한쪽의 이념으로 세뇌하고 있는 형국이다. 서로 다른 필자의 두 기사가 ‘백범일지’의 다음 구절을 똑같이 인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문장이 그들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남을 침략하기는커녕 만날 당하고 있고, 생활수준이 한없이 높아져 ‘풍족’의 기준은 하늘만큼 치솟아 있으며, 적(敵)은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지금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서 이 무슨 반(反)산업적이고, 공허하며, 어리석은 담론이란 말인가. 이런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경구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사람을 영웅시하고, 성공적인 국가의 초석을 놓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TV나 신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 그의 동상도, 그의 이름을 딴 공원도, 그의 업적을 보여줄 기념관 하나도 없는 나라, 이건 도저히 문명국이라 할 수 없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징비록#김구#이승만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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