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의술]환자에 긍정 바이러스… 유방암 3기-1기 중년자매 동시 치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5일 03시 00분


문병인 이대목동병원 유방암·갑상선암센터장

문병인 이대목동병원 유방암갑상선암센터장(가운데)이 유방암을 함께 극복한 이민경(왼쪽), 이영신 자매와 함께 암 진단 당시 상황과 이후 극복 과정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문병인 이대목동병원 유방암갑상선암센터장(가운데)이 유방암을 함께 극복한 이민경(왼쪽), 이영신 자매와 함께 암 진단 당시 상황과 이후 극복 과정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아이고, 큰일 났구나.’

유방암 치료의 대가로 손꼽히는 문병인 이대목동병원 유방암·갑상선암센터장(55)은 이영신 씨(58)가 처음 병원을 찾은 2012년 8월의 그날을 아직 잊지 못한다. 정확한 검사 전이었지만 이미 가슴에서 지름 8cm 크기의 혹이 만져졌다. 암 환자 중에서도 혹이 매우 큰 편에 속했다. 피부색이 약간 변한 것으로 보아 암이 전이됐을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베테랑 의사에게도 암 선고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문 센터장은 환자의 눈을 보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씨의 표정이 일곱 살 소녀처럼 천진난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환자의 표정만으로 증세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초기 환자들은 비교적 표정도 여유가 있는 반면, 말기 환자는 표정이 그만큼 어둡다는 것. 문 센터장은 “이 씨의 증세는 유방암 3기 정도였는데, 표정은 지난 30년 동안 봤던 환자 중 가장 밝았다. 완치자를 만난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 착한 거짓말이 환자를 살리다

문 센터장은 증세의 심각성에 대해 내색하지 않았다. 환자의 극복 의지가 강해 보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꺾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의료 분쟁이 많아지면서 의사들이 다소 냉정하게 방어막을 치고 환자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환자에게 눈곱만큼도 도움이 안 된다”며 “당시 ‘충분히 나을 수 있다’고 착한 거짓말을 했는데, 결국 이 씨가 의사를 믿고 병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마음이 커서였을까. 암 세포가 줄어드는 속도가 다른 환자들보다 빨랐다. 첫 진단을 받은 8월, 이 씨는 암 덩어리가 너무 커 바로 수술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암 세포에 맞는 표적 항암제를 투여해 지름 8cm의 혹을 3개월 만에 1.5cm까지 줄였다. 문 센터장은 “최고로 독한 항암제 중 하나였는데, 너무 잘 버텨 줬다. 이렇게 빨리 암 세포가 줄지 몰랐다”고 말했다.

○ 조기 암 발견은 오히려 축복

하지만 수술을 앞둔 2012년 크리스마스, 이 씨에게 위기가 닥쳤다. 누구보다 의지했던 언니 이민경 씨(61)가 문 교수의 제안으로 받은 검사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동생 이영신 씨는 “언니와 나는 결혼도 안 하고 의지하며 살았기에 우애가 남달랐다. 내가 암 선고 받을 때보다 10배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문 센터장은 두 자매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두 자매 모두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것이다. 조기 발견은 축하할 일이다. 어차피 발견될 거 동생 때문에 빨리 발견된 게 다행이다. 동생이 언니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준 것이다.” 의사의 말을 듣고 두 자매는 뜨거운 눈물을 쏟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유방암 1기였던 언니 이민경 씨는 가슴 부분절제술을 받고 회복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동생 이영신 씨의 수술은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암 세포는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퍼져 있었다. 림프절을 절제할 때 팔로 올라오는 혈관을 살리면서도 암 세포의 뿌리를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도려내는 것이 중요했다. 유두까지 암세포가 퍼져, 피부를 최대한 얇게 남기면서 피가 순환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수술 성공의 관건이었다. 문 센터장은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알 수 없는 확신을 느끼면서 수술을 했던 기억이 난다”며 “수술이 술술 풀려서 회복 속도도 빨랐다”고 말했다.

○ 암 완치, 의술만으론 불가능

자매는 수술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현재 암 재발 없이 90세 노모와 함께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통상 수술 후 5년 동안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암 완치 판정을 내리는데, 완치까지 2년이 남은 것이다. 최근에는 이대목동병원이 주최한 유방암 완치자 프로그램을 통해 문 센터장과 함께 백두산 천지에도 올랐다.

이영신 씨는 “평소에는 너무 소탈해서 높은 분인 줄 몰랐는데, 백두산을 같이 가보니 우리 센터장님이 너무 높은 분이더라”며 “문 센터장님은 우리가 의사를 믿을 수 있게 이끌어주신 평생의 은인이다”고 고마워했다. 문 센터장은 모든 암 환자들에게 이 자매의 긍정 바이러스를 전달해 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항암 치료와 수술로는 암 세포를 99%까지밖에 제거할 수 없다. 마지막 1%는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과 행복바이러스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나도 두 자매를 치료하면서 의술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배웠다”고 강조했다.

▼ 유방암 예방하려면 ▼
“콩 발효식품 섭취 유방암 발병률 크게 낮출 수 있어”


유방암은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고 치료 성공률도 높은 암이다.

대개 유방암은 유전이 강하게 작용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전성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약 7%에 불과하다. 유전성 유방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진 BRCA1, BRCA2 유전자 보유자도 미리 알고 대비하면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유방암 가족력이 있다면 유방암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가족은 생활 습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같은 신체적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방암 환자 중 40∼50%는 가족력을 가지고 있다.

유방암 예방에는 유방암을 일으키는 에스트로겐을 조절하는 콩이 좋다. 5세부터 청국장 등 콩 발효식품을 적당히 섭취하면 유방암 발병률을 절반가량 낮출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최근에는 선제적으로 가슴을 절제하는 극단적 예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세계적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2013년 양쪽
유방을 절제했다고 밝혔다. 졸리는 본인이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률이 높은 유전자를 가졌기에 예방적 수술을 선택한 것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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