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의 공감 사회]70억 인구에게 새 주소가 생긴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9일 03시 00분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도로명 주소에 도무지 적응 안 된다. 서초동 대신 8개 구가 통과하는 ‘남부순환로’라고 적는 게 더 합리적이란 이유를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시행한 새 주소체계가 최근 모임에서 화제에 올랐다. 동 이름도 없고 아파트 명칭까지 숫자로 대체되면서 주소만 듣고 어디쯤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아졌다고들 말했다. 두 개의 주소 사이에 헷갈리는 우리와 달리 주소가 아예 없어 고민인 나라들도 있다.

주소 없이 사는 40억 인구

몇 년 전 터키 출장을 갔는데 이스탄불의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한참 헤매다 상봉한 현지 가이드는 이런 얘기를 했다. “이 동네는 주소가 없다. 편지도 물건도 알음알음 배달한다.”

그때는 ‘주소 없는 마을’을 오래된 도시의 낭만처럼 생각했으나 그건 무지가 부른 착각이었다. ‘올해의 런던 혁신기업상’을 받은 신생기업 ‘what3words’를 소개한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세계 인구 70억 명 중 40억 명이 제대로 된 주소가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 공식 주소가 없으면 일상의 불편을 넘어 사회의 행정서비스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응급환자가 생겨도, 범죄가 발생해도 도움받기 힘들다.

뮤지션 출신 크리스 셸드릭이 창업한 ‘what3words’는 지구상 모든 대륙과 바다를 3×3m 정사각형으로 나누고 네모마다 무작위로 조합한 3개의 단어로 된 주소 체계를 만들었다. 이 방식대로 동아일보에 부여된 주소 중 하나를 소개하면 ‘print.mornings.attends’다. 셸드릭은 연주장비 트럭이 대형 공연장이나 야외에서 기존 주소만으로 목적지를 쉽게 찾지 못하는 것을 고민하다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스마트폰의 앱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해 브라질의 빈민촌, 난민촌 텐트에 거주하는 사람도 당당히 주소를 말할 수 있다. 시베리아 벌판이나 사하라 사막에서 길을 잃어도 좌표 대신 답할 주소가 생겼다.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혁신적 기업이 주목받는 시대가 열렸다. ‘세 단어 주소’처럼 개인의 사소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발상이 개도국의 삶과 경제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기업의 경쟁력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구글의 비영리기구 지원 프로그램에서 ‘톱10’에 선정된 한국인 1인기업도 그런 사례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임희재 씨는 7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토킹포인츠(www.talkingpts.org)를 설립했다. 비영어권 이민가정과 교사 사이의 의사소통을 자동번역으로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간 임 씨에게는 다른 집과 달랐던 언어장벽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를 응용하면 다문화사회로 가는 한국에도 유용할 것 같다.


공유가치 창출 고민해야


“우리 사회가 한계비용 제로에 근접하는 사회에 더욱 가까워진 것은 시장에서 타인들의 행복을 증진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사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이중적 역할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저서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했던 말이다. 두 신생기업은 기업 가치를 높이면서 사회 문제도 치유하는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의 모델이다. 한국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일깨운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이름을 붙여 ‘CSV포터상’을 작년에 제정했다.

인터넷망에 기대어 ‘죽창’ 같은 극단적 언어로 불평등한 현실을 개탄하는 청춘이 있고, 홀로 궁리해 기업과 사회가 동반 성장하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청춘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각자 찾아야 할 답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도로명 주소#what3words#공유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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