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기자의 談담]“중동의 고통, 우리 아픔으로 공감해야 세계화 의미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3일 03시 00분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중)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중동 전문가로 언론에 자주 나오는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47)를 최근 만났다. 그는 말했다. “사막의 밤하늘은 별이 쏟아져 아름답지만, 한낮의 사막은 죽음을 연상케 하는 절망의 느낌도 있어요.” 그의 ‘사막론’은 중동의 이미지와 겹치는데, 왠지 인간적이다. ‘천일야화’의 신비함과 테러의 공포가 상존하는 그곳과 사람들을 향한…. 》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21세기 젊은이들의 무기력이 가장 나쁜 형태로 귀결된 게 IS”라며 “그들의 분노와 회한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21세기 젊은이들의 무기력이 가장 나쁜 형태로 귀결된 게 IS”라며 “그들의 분노와 회한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선미 기자
김선미 기자
젊은이들 무기력이 귀결된 게 IS
한국에 중동은 산유지역으로서 중요한 생명줄인 동시에 국제분쟁 지역이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강국 연구에 밀려 중동 연구는 미흡했다. 영국 더럼대에서 중동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연세대에서 시간강사로 강의하던 인 교수가 외교안보연구원(현 국립외교원의 전신)에 2005년 들어간 것도 같은 이유였다. 2004년 이라크에서 일하던 김선일 씨가 알카에다 무장 테러조직에 납치 살해됐을 때 부랴부랴 원인과 대책을 찾아 나섰지만 정작 우리 외교부 싱크탱크인 연구원에는 중동 연구자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파리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Islamic State)가 자신들을 국가라고 칭합니다. 그렇게 주장하면 국가가 됩니까.


“국가가 구성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하죠. 국민, 영토, 주권. 어찌 보면 IS는 국민과 영토는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국민이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주권이 없습니다. 국가가 아니죠. 그러나 그들은 지금 2015년에 이슬람교 최초의 칼리프(최고 지배자)가 나온 632년의 국가를 재현한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동의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자기들만의 이상향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겁니다.”

―이상향이라고요.

“중동에는 뿌리 깊은 패배주의가 있습니다. 7∼10세기 지중해 문명의 표준을 이끌다가 놓쳤다는 역사적 박탈감이죠. 이집트 나세르 대통령(1918∼1970)이 아랍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런 패배감을 극복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아랍의 봄’(2010년 12월 이후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들) 이후 혼란이 더해지면서 중동의 극단주의 청년들은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선거나 정당 등 서구식 제도로는 안 된다. 힘과 칼과 강력한 꾸란(아라비아어로 쓰인 이슬람 경전)으로 우리의 이상향 국가를 재건하자’고요.”

―왜 극악한 폭력 테러로 나타납니까.

“절대 다수는 폭력과 테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고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염세주의가 중동의 젊은이와 지식인 사이에서 퍼지고 있어요. IS는 이 틈을 파고들죠. 과거 이슬람의 영화로운 시대를 자기들이 구현하고 있다고 속이면서 피를 부르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미화합니다. 문제는 무슬림과 상관없는 서양인도 IS를 하나의 대안으로 여기는 겁니다. 이슬람 순교주의자(샤히드)들은 인생 별거 없다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테러로 목숨을 바치면 36명의 처녀와 36명의 천사 등 72명의 아내가 생긴다’고 말하죠. 21세기 젊은이들의 무기력이 가장 나쁜 형태로 귀결된 게 IS입니다.”

문명 충돌 아닌 근본주의자들의 충돌
―문명의 충돌인가요.

“그렇게는 안 봅니다. 이슬람권에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다수이니까요. 텍스트에 사로잡힌 근본주의 사람들끼리의 충돌이죠. 과거 독일 나치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근거도 예수를 못 박은 유대인을 심판한다는 성서적 맥락이었듯 말이죠.”

―각국의 이해관계가 지금의 중동 정세를 어렵게 만든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가 각각 중동에 자기 세력을 만든 게 지금 이라크 시리아 문제의 발단이니까요. 또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소련군과 맞서 싸우도록 수니파 아랍인들을 모아 만든 무자히딘(아프가니스탄 반군단체)의 일부가 나중에 알카에다가 됐으니 역사적 아이러니죠. 2011년까지 미국이 중동 문제에 개입하면서 이슬람의 일부 광적인 세력은 ‘우리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신보수주의(네오콘)와 싸워 미국을 쫓아냈다’는 환각도 갖게 됐어요.”

―국제사회는 이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아랍의 대중은 현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수니파 자국민을 참혹하게 죽이는 데 반해 IS는 주로 외국인을 죽이면서 적어도 시리아의 수니파 국민은 아사드로부터 보호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리아 국민들은 지금까지 이슬람 극단주의의 지배를 받아보지 않은 세속주의자들입니다. 지금은 정부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IS에 복종하지만, 결국 극단주의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겁니다. 아사드도 IS도 아닌 착한 정권(굿 거버넌스)이 들어서 시리아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확신과 모델을 국제사회가 만들어줘야 합니다.”

―중동의 나라별 향후 전망이 궁금합니다.

“전 이란을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인구 8000만 명의 대국이고 카스피 해와 걸프 해의 석유를 관할하는 페르시안의 후예로서 교육열과 여성 인력의 활용도 높습니다. 개혁 개방의 물꼬가 트이면 진도가 빠를 겁니다. 시리아는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당장은 답이 없는데 유엔을 믿어봐야죠.”

자기만의 공간-역사를 만드세요
인 교수는 20일 국립외교원에서 베스트 교수상을 받았다. 2년 연속 수상이다. 그는 중동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평소 페이스북에서 활발하게 나눈다. 대학에도 종종 출강한다. 그의 강의를 듣고 중동으로 진로를 정한 ‘인남식 후학(後學)’들도 생겨났다.

―중동을 연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중동 관련 석사논문을 쓰려고 하니 교수님들이 말릴 정도로 당시 중동 연구는 비주류였습니다. 그래도 성서를 읽으면 늘 궁금했습니다. 수천 년 전 땅(예루살렘)에 대해 20세기에 서로 내 땅이라고 주장하는 건 어떤 이유일까.”

―그래서 답을 찾았나요.

“그들의 역사와 세계관에 대해 지식으로는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다만 그들의 정서 깊은 곳에 깔려 있는 분노와 회한까지 공감하고 알아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호기심이 끊이지 않아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후학들에게 어떤 이유로 중동 연구를 권합니까.

“유럽 외교관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선호하는 근무지역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상당수가 중동 근무를 원하더라고요. 왜 그런가 물었더니 왕정, 공화정, 민주정, 신정 등 다양한 정치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분쟁, 테러, 석유, 3대 유일신 종교 등 한 명의 외교관으로서 도전해 볼 만한 현대 국제 쟁점이 죄다 중동에 모여 있다는 거예요. 신화와 역사와 낭만이 버무려져 있는 중동을 공부하는 건 분명 매력적인 일입니다. 다만 알라딘의 요술램프나 신드바드의 낭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무슨 뜻인가요.

“지금 중동에선 하루하루 숱한 사람이 죽음에 노출돼 있는데, 중동을 공부하면 이 현실과 마주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세계화된 인간상을 물어보면 이렇게 답해요.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전문성으로 비즈니스나 협상을 성공시킨 뒤 고급 와인과 함께 저녁을 즐기는 것’이라고요. 저는 동의를 하면서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그것이 밖으로 나가는 세계화라면 우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세계화가 선행돼야겠다. 중동의 고통을 우리 아픔으로 내면화하고 공감해야 세계화가 의미를 갖는다’고요.”

―어떤 공감일까요.

“식민역사, 전쟁, 빈곤, 군부독재, 민주화 투쟁…. 우리가 과거 몸서리치며 걸었던 길을 지금 중동과 아프리카가 걷습니다. 우리는 시리아 국민들의 손을 잡아주며 ‘그 심정 우리가 알아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감의 자산을 가진 나라입니다.”

―중동에 자주 가나요.

“잦을 때는 1년에 10차례 이상 다녔습니다. 나일 문명의 피라미드, 시리아 고대 유적지도 좋지만 늘 생각나는 곳은 사막입니다. 모래와 하늘밖에 없는 사막에 서면 ‘내’가 보여요. 숨소리도 크게 들리고, 생각도 선명하게 알게 된답니다. 하지만 요즘은 IS 때문에 사막에 가는 게 위험해졌어요.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면 더 많은 사람이 꼭 사막을 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중동을 이해하기 위해 추천할 만한 책이나 영화가 있나요.

“학자로서 추천하기 민망한 제목이지만 ‘하룻밤에 읽는 중동사’입니다. 미야자키 마사카쓰 일본 홋카이도 교육대 교수가 정리한 책인데 무엇보다 소주제별로 중동의 다양한 쟁점을 잘 정리했어요(대형서점에 확인하니 현재 품절). 어렵더라도 성서와 꾸란, 유대인의 탈무드도 읽어보면 좋겠네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사막의 라이언’은 지금의 중동과 북아프리카 정세를 규정하는 중요한 시점을 다룬 역사물이고요. ‘천국의 아이들’이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면 마음이 맑아지면서 현대 중동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어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을 향한 조언은….

“바빌론과 이집트 제국에 안주해 성(城)을 쌓으려고만 하지 말고, 광야로 사막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다 가는 자리, 몰려드는 자리를 마다하고 자기만의 공간과 자기만의 역사를 만들어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의 말처럼 ‘광야로, 사막으로’ 나갔고 자신이 얻은 것을 꾸밈없이 열정적인 방식으로 나누고 있었다. IS는 왜 만행을 저지르며 동조자들은 무엇 때문에 추종하는지, 그리고 이슬람과 중동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그와 두 시간여 인터뷰하는 동안 계속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오직 마음으로 찾아야해.”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중동#세계화#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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