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16개 시도(세종시는 충남에 포함) 중 가장 행복한 도시는 ‘충남’이었다. 충남의 풍부한 일자리와 여유로운 사회적 분위기가 주민 행복도를 높인 요인으로 분석됐다. 반면 경기 침체를 겪는 부산은 행복도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나타났다. 창간 95주년을 맞은 동아일보가 ‘2020 행복원정대 프로젝트’의 하나로 딜로이트컨설팅과 함께 개발한 ‘동아행복지수(동행지수)’ 지역별 조사 결과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두 번째 비밀은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었다. 대도시를 벗어난 전원에서 스스로 일과를 조절하며 행복을 느끼는 이도 많았다. 》
▼ 좋은 일자리 많고 집값 부담 작고… “맘 편한 충남이 좋아” ▼
남편은 매일 밤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내를 마중 나간다. 4일 오후 9시 10분.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친 충남 아산시 고속철도(KTX) 천안아산역에서 남편 김승연 씨(30)는 아내 정보경 씨(28)를 환한 표정으로 맞았다. 둘은 지난달 21일 결혼해 아산에 정착한 신혼부부다.
순천향대 교직원인 김 씨와 직장이 서울인 아내 정 씨는 신혼집 위치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김 씨는 서울의 전세금은 아산에 있는 신혼집의 2배 이상 비싸 놀랐다고 했다. “결혼 준비를 위해 주말에 서울 강남 일대를 차로 돌아다녔는데 2km를 가는 데 3시간이 걸렸다. 정서적 답답함 등 행복을 방해하는 요인을 피해 충남에 머무르기로 했다.”
정 씨는 “충남도 서울처럼 여가 시설이 많고 분위기도 여유로워 만족한다”고 했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선물은 ‘매일 밤 역으로 마중을 나간다’는 약속이었다. 김 씨 부부를 사로잡은 충남은 동아일보-딜로이트컨설팅의 ‘동아행복지수(동행지수)’ 지역 평가에서 60.11점으로 1위였다. 전국 평균은 57.43점.
○ ‘청년 일자리와 심리적 안정’ 다 잡은 충남
충남 지역의 행복은 주로 20대 남성(68.83점)과 30대 여성(65.88점)이 이끌고 있다. 지역 내 대기업 등 좋은 일자리가 젊은이들의 만족감을 채웠다. 올해 3분기(7∼9월) 충남의 청년 고용률은 46.2%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충남도 기획조정실 조진배 주무관은 “천안과 아산에 위치한 삼성, 현대 등 대기업과 서산에 위치한 석유화학단지를 중심으로 활발한 고용창출이 생겨 행복도가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천안시에서 직장을 얻은 충남 토박이 김우민 씨(29)는 “서울에서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충남에 청년 구직자들이 원하는 직장이 많다”고 말했다.
30대 충남 여성의 직장생활 만족도도 높았다. 충남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54.7%·4위)은 전국 상위권이다. 딜로이트컨설팅은 “충남은 주택보급률이 전국 최고이며 전세금도 안정적이어서 가계 대출 부담도 작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지역 전반에 걸친 여유로운 분위기가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사회·문화적 특징도 한몫한다. 오정수 충남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충남은 정치적(영호남 갈등), 역사적(백제·통일신라 등에 귀속)으로 ‘중간지대’에 있었다”며 “극단적 대립, 치열한 갈등에서 벗어난 여유와 안정감이 주민 내면에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 ‘제2의 도시 자부심’이 사라진 부산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불려 온 부산의 동행지수는 52.74점으로 전국 평균보다 4.7점이나 낮았다. 부산은 40대 남성(47.13점)과 50대 남성(52.64점)의 행복도가 크게 낮았다. 책임과 의무는 커졌지만 부산 경제의 침체로 안정을 추구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산의 경제활동 참가율(58.2%)과 고용률(56.3%)은 전국 최하위다. 여름철 관광 명소인 부산 해운대구의 한 부동산 업자는 “아파트 전세금이 지난해보다 2500만 원이나 올라 세입자 상당수가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청년층이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부산을 떠나면서 생긴 공백도 크다. 부산에 살고 있는 양기원 씨(29)는 “부산 내 명문대를 졸업한 학생 상당수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서울로 간다”고 전했다. 지난해 부산의 25∼29세 전출 비율은 24.8%로 전입 비율(22.2%)보다 높았다. 정영숙 부산대 교수(심리학)는 “유능한 젊은이가 떠나 도시가 활력을 잃으면서 부산 시민들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자부심을 잃고 있다”며 “정치적으로는 대구, 경제적으로는 울산이 급성장하는 것을 본 뒤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고 말했다. ○ 먼 미래 내다볼 여유 없는 서울
서울의 동행지수 역시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 55.38점(16개 시도 중 13위)이었다. 서울의 ‘심리적 안정’(15위) 순위는 최하위권이었다. 딜로이트컨설팅 관계자는 “동행지수 최하위 부산과 함께 서울에 거주하는 응답자들에게서 ‘먼 미래’보다 ‘가까운 미래’를 중시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장기 비전과 목표를 생각할 시간적 여유 없이 하루하루 업무 마감에 매달리면서 행복도가 떨어진다는 것.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경수 씨(32)는 “출퇴근만 반복하다 보니 업무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강원(동행지수 59.93점·5위)은 ‘건강’ ‘환경’의 행복도가 1위였다. 홍천에 거주하는 이정훈 씨(34)는 “(강원에는) 주민들이 산과 숲 등 자연과 어우러져 스트레스를 해소할 공간이 많아 좋다”고 설명했다.
▼ 풍요로운 강남?… 눈높이 따라 달라 ▼
서울 강남 여성, 행복지수 높지만 자녀교육-재산 경쟁하는 순간… 자존심에 스스로 만족도 떨어뜨려
“친구들은 ‘부자 동네에 산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같은 동네 안에서도 자녀의 학업 활동 지원 등을 두고 ‘보이지 않는 경쟁’이 계속된다. 남보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은 강남도 다른 지역과 같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성모 씨(52·여) 얘기다. 대한민국 부자들이 사는 상징적인 곳이지만 이곳에서도 비교를 시작하는 순간 행복도는 달라진다. 서울 25개 구의 동행지수를 분석한 결과 대표적 부촌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동행지수는 63.17점으로 강남 3구를 제외한 지역(53.61점)의 평균보다 10점 가까이 높았다. 전국 평균 동행지수(57.43점)보다도 높은 수치다. 성별로 나눠 봤을 때는 ‘강남 3구 여성’이 65.43점으로 강남 3구의 남성 평균(61.08점)보다 행복도가 높았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일상생활 만족도가 높았다.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취미생활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반면 기혼 여성의 집안일 참여도는 낮았다. 동행지수 분석에 참여한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직장생활을 하는 강남 3구 여성의 자존감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며 “집안일에 매몰된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강남 3구 여성은 객관적인 행복 지표상으로는 서울에서 가장 행복한 범주에 속한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느끼는 ‘주관적 행복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올라갈수록 ‘가족’ ‘건강’ 등에 대한 행복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행복을 측정할 때 자신보다 생활수준이 더 높은 존재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곽 교수는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보다 소득이 더 높은 사람, 지금보다 건강했던 젊은 시절의 몸 상태 등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숙 아주대 교수(심리학)는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과 성취를 중시하는 서양과 달리 동양의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과 상대를 비교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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