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시 신녕면 연정2리에 사는 이춘자 씨(75·여)는 6월 초 집에 불이 난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 이 씨는 “허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고 했다. 밭 주인 승용차를 얻어 타고 도착한 집은 이미 불에 훨훨 타고 있었다. 이웃집 할머니가 곰국을 끊이다 불을 끄는 것을 깜빡해 옮겨붙은 화재였다. 마을에서 가까운 119안전센터에서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불길을 잡지 못해 영천소방서까지 지원해 겨우 불을 껐지만 집은 모두 타 버린 뒤였다.
이 씨는 평생 살아온 집이 화마로 초토화되는 모습을 망연자실하며 지켜봐야 했다. 옆에는 5년여 전 뇌중풍(뇌졸중) 수술을 받은 장애 5등급 아들(52)이 뒤늦게 도착해 멍하니 서 있었다. 걸을 수는 있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아파서 아무 일도 못 하는 아들이었다. 이 씨는 “불이 꺼진 집에는 숟가락 하나 챙길 게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안방과 부엌은 시커멓게 그을려 독한 냄새만 풍겼다. 지붕은 한쪽이 무너져 내려앉았고 대들보는 휘청거려 추가 붕괴 우려마저 있었다. 가재도구는 쓸 만한 게 없었다. 이 씨는 “사고 위험 때문에 전기 공급마저 끊어져 한동안 헛간에서 살았다. 가스레인지 하나 건져서 밥만 해 먹는 처지였다”고 했다.
다시 집을 지어야 했지만 돈이 없어 3개월여 동안 그냥 지냈다. 특히 비가 세차게 내리는 장마 때는 집이 쓰러질까 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이 씨는 “이웃 주민과 바닥 공사부터 시작해 집을 고쳐 보려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화재로 온갖 신경을 썼던 탓일까. 이 씨는 전에 당뇨 합병증으로 앓았던 눈 출혈이 심해졌다. 대형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집안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한 달 평균 수입은 기초연금과 주변 밭일을 돕고 받는 돈 등을 포함해 30여 만 원. 각종 세금을 내고 병원비를 쓰면 남는 게 없었다.
딱한 사정은 마을 곳곳에 퍼졌다. 그때 한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친척과 이웃의 도움으로 조립식 주택을 짓기로 했다. 소식을 접한 영천시 희망복지지원단과 야사사회복지관도 발 벗고 나섰다. 이 씨의 안정적인 주거 공간 마련을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위기 가정 지원 사업에 신청했다. 최근 공사를 마친 이 씨의 집은 화재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최신 보일러를 설치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게 됐다. 부엌에는 싱크대도 생겼다. 이 씨를 도운 최영준 야사사회복지관 팀장은 “영천의 사회적 기업이 전기 수도 난방 도배 등을 저렴하게 시공했다. 지역 사회 모두 힘을 합쳐 도운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희망을 찾았다. 이제 소소한 것은 하나씩 채워 나갈 생각”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위기 가정 지원 사업은 이 씨처럼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돕고 있다. 신청 문의는 중앙위기가정지원 콜센터(1899-7472)로, 후원 문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콜센터(080-890-1212)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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