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의 공감 사회]“두 번의 크리스마스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4일 03시 00분


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홀로 사는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장을 보고 돌아와 자식들의 전화 메시지를 확인한다. 다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 온다는 한결같은 연락. 장바구니를 내려놓은 어깨가 축 처진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몇 해에 걸쳐 노인은 ‘나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다시 돌아온 크리스마스, 각자 분주히 살던 자식들이 뜻밖의 소식에 망연자실한다. 그들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에 뒤늦은 후회를 안고 고향 집에 전원 모인다. 안으로 들어서니 완벽하게 차려진 크리스마스 식탁이 그들 앞에 있다. 그때 슬그머니 나타난 아버지는 말한다. “이런 방법 말고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불러 모을 수 있겠니?” 자식들은 눈물바람으로 아버지를 뜨겁게 포옹한다. 돌아온 탕자처럼.

‘나홀로족’ 대세라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에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이 내놓은 광고의 내용이다. 이제는 감동도 광고를 통해 얻는 세상인가. 우울하게 출발해 뭉클한 반전으로 끝난 광고는 사회관계망을 타고 자국을 넘어 지구촌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살아생전 그리운 자식들을 만나기 힘들어 거짓 장례식까지 꾸민 아버지의 절박한 마음에 그만큼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던 게다.

최근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본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과잉연결의 시대에 우리가 진정 목마른 것은 사람의 정이란 사실을 일깨워준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세 자매는 15년 전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집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처음 만난 배다른 여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세 딸과 아버지를 빼앗은 여자가 낳은 딸. 한국 같으면 분노와 복수의 막장 드라마로 탐낼 법한 소재가 온돌처럼 따스한 영화로 탈바꿈해 관객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주었다.

첨예한 세대갈등을 뛰어넘는 세대공감 드라마로 떠오른 ‘응답하라 1988’의 경우 가족 울타리를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랫집에 세든 덕선 엄마의 건강검진 결과를 기다리며 주인집 정봉 엄마는 애간장을 태우고, 천재바둑기사 택이의 후지쓰배 우승에 골목 사람들은 내남없이 기쁨을 나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이 한식구처럼 ‘어울렁 더울렁’ 사는 모습에 열광하는 현상도 지금 우리에게 가장 결핍된 요소를 콕 집어냈기 때문 아닐까 싶다.

혼자 있는 삶에 익숙한 세상이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 따르면 한국인 중 56.8%가 나 홀로 여가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8년 전 44.1%였다. 특히 20대는 71.1%가 혼자만의 여가에서 만족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에서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을 위한 간편식이, 서점에서 ‘혼자 있는 시간의 힘’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같은 책이 잘나가는 이유를 알 만하다. 새해 트렌드를 전망한 서적들은 내년에도 여전히 ‘나홀로족’이 대세라고 점친다.

사람의 정이 그립다

한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편해졌다 해서 외로움의 무게가 덜한 것은 아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다음소프트가 트위터 블로그 등을 분석한 결과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외롭다’를 언급한 횟수가 2011년 3264회에서 올해는 1만7870회로 5배 넘게 증가했다.

‘두 번은 없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너는 아름답다.’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 겨울편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를 선택했다. 여기에 대입하면 두 번의 크리스마스는 없고 반복되는 크리스마스도 없다. 올 세밑,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으며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길….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크리스마스#나홀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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