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혼나긴 했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아닌가? 더 심했을 수도 있었나? 그래서 이 친구와 내가 엮인 거군요.(웃음)”
모비스의 ‘모범생’ 양동근(34)은 ‘문제 선수’ 전준범(24)과 나란히 인터뷰 요청을 받은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다. 2004년 모비스 유니폼을 입은 뒤 유재학 감독 밑에서 11년째 뛰고 있는 양동근은 유 감독이 원하는 움직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유 감독 역시 ‘최고의 선수’로 주저 없이 양동근을 꼽는다. 하지만 그 역시 전준범 못지않게 유 감독에게 혼쭐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경기 운영을 혹독하게 배웠죠. 어렸지만 포인트 가드로서 ‘형, 올라와. 저기로 가’ 이렇게 말할 정도가 돼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제는 ‘백조’가 된 양동근이 코트에서 가장 신경 쓰는 선수는 ‘미운 오리 새끼’ 전준범이다. 작전시간이 끝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전준범에게 양동근은 유 감독의 작전 지시를 한 번 더 설명해 준다. 전준범이 종종 ‘해서는 안 될 실책’으로 유 감독의 인내력을 시험하기 때문이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유 감독은 재능은 있지만 근성이 없던 전준범에게 “도전하겠다”고 선언했고, 전준범도 “도전을 받아들이겠다”고 답해 화제가 됐었다. 극강의 ‘케미’(잘 어울린다는 의미)를 자랑하는 이 커플에겐 기념일도 생겼다. 전준범이 같은 날 2년 연속 종료 2초를 남기고 파울을 범해 생긴 ‘전준범 데이’다.
지난해 12월 17일 SK전에서 전준범은 3점 차로 앞선 경기 종료 2초 전 2점 슛을 시도하던 헤인즈에게 반칙을 해 추가 자유투까지 내줬다. 다행히 헤인즈가 자유투를 실패해 한 점 차 승리는 지켜냈지만 유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든 전준범을 한 대 때릴 듯이 매섭게 째려봤다. 정확히 1년 뒤 운명의 장난처럼 전준범은 삼성과의 경기에서 72-71로 앞선 종료 직전 반칙으로 자유투를 내줘 팀에 패배를 안겼다. 하지만 유 감독은 1년 전처럼 화를 내지 않았다. 지난해 후보 선수로 뛰며 평균 4점대 득점에 그쳤던 전준범은 이번 시즌에는 주전으로 나서 평균 10.3득점을 터뜨리고 있다.
“작년엔 솔직히 말도 안 되는 반칙을 해서 많이 혼난 것 같아요. 이번에는 제가 따라가려다 (반칙을) 한 거라….” 전준범이 말끝을 흐리자 양동근이 “누구나 그 상황이면 할 수 있는 반칙이었다?”라며 거들어줬다. 전준범은 “제가 좀 더 영리하게 했으면 안 했을 수 있는 반칙이었죠”라며 꼬리를 내린다. 양동근은 “너무 붙어 있긴 했어요. 다음 상황까지 생각을 못 했던 거죠. 그런 게 경험이라 생각해요. 다음에는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대처할 거예요”라며 후배를 토닥여 주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 그 ‘싸늘한’ 상황에서 전준범은 왜 하트를 날렸을까. “전 진짜 안 했어요. 경기 끝나면 머리 위로 박수를 치거든요. (양손을 머리 위로 내려놓으며) 이렇게 했나?” 전준범은 결백을 호소했다. 양동근도 “준범이가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 상황에서 하트를 날렸겠어요”라며 맞장구를 치다 “너도 모르게 한 것 아니냐, 파울처럼?”이라며 전준범의 약을 올렸다.
데뷔 3년 차에 주전으로 30분 이상씩 뛰긴 올 시즌이 처음인 전준범은 아직 혼란스러운 게 많다. “(함)지훈이나 저는 오래돼서 알잖아요. ‘아, 이건 아닌데 준범아 조심해야 할 타이밍이야’ 이런 싸∼한 느낌이 있죠.(웃음)” 양동근의 말에 전준범은 “아직은 느낌이 올 때가 있고 안 올 때가 있다”며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했다. 양동근은 “그래도 준범이가 밉상은 아니에요. 한 번씩 주먹을 부르지만 참을 만한 정도?”라며 미운 오리 전준범의 날갯짓을 응원했다.
한편 모비스는 이날 안양에서 열린 KGC와의 방문경기에서 89-66으로 승리해 선두를 질주했다. 오리온은 삼성을 97-69로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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